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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비 오는 날 이어폰으로 느린 피아노곡을 듣다가 가슴이 먹먹해진 적 있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상해요. 나는 딱히 슬픈 일이 없고, 이 곡을 쓴 작곡가는 어쩌면 백 년 전에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작곡했을지도 몰라요. 나도 안 슬프고 작곡가도 안 슬픈데, 그럼 이 노래 속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은 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이 묘한 질문을 평생 붙들고 늘어진 철학자가 있어요. 미국 사람 수전 랭어, 1895년부터 1985년까지 아흔 해를 살았던 분이에요. 오늘은 이분이 찾아낸 대답을 따라가 볼게요.

먼저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을 떠올려 봐요. "나는 어제 학교에 갔다." 이런 문장은 단어를 하나씩 순서대로 꿰어야 뜻이 생겨요. 마치 구슬을 실에 한 알씩 꿰는 것처럼요. 순서를 섞어서 "갔다 학교에 어제 나는"이라고 하면 금방 어색해지죠.
랭어는 이렇게 한 알 한 알 따져 가며 풀어야 하는 상징을 '풀어 가는 상징'이라고 불렀어요. 말, 글, 숫자, 계산이 다 여기에 들어가요. 똑똑하고 정확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어요. 한 줄로 세울 수 없는 건 담지 못한다는 거예요.

친구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우리는 "눈썹이 이렇고, 그다음 코가 저렇고" 하고 한 부분씩 읽어서 친구를 알아보지 않아요. 보는 순간 전체가 한꺼번에 들어오죠. 그림도, 사진도 그래요. 부분을 차례로 더하는 게 아니라 통째로 와닿아요.
랭어는 이런 걸 '한눈에 보여 주는 상징'이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음악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고 봤어요. 음악은 한 음씩 따로 뜻을 따지는 게 아니라, 흐름 전체가 한 덩어리로 마음에 닿으니까요.

여기가 랭어 생각의 핵심이에요. 음악은 "이건 슬픔입니다" 하고 감정의 이름표를 붙여 주지 않아요. 대신 감정이 움직이는 '모양'을 그려요.
무슨 말이냐면, 우리 마음속 감정에는 생김새가 있어요. 천천히 차오르다가, 팽팽하게 조였다가, 어느 순간 탁 풀리죠. 기다릴 때 마음이 조마조마 부풀고, 일이 풀리면 스르르 가라앉는 그 흐름 말이에요. 음악도 똑같이 움직여요. 소리가 서서히 높아지고, 긴장으로 조였다가, 마지막 화음에서 풀려요. 그 소리의 오르내림이 마음의 오르내림과 꼭 닮은 거예요.
그래서 랭어는 음악을 '감정 생활을 소리로 옮긴 모형'이라고 했어요. 슬픔이라는 단어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슬픔이 흘러가는 그 결을 소리로 그려 보여 주는 거죠. 말로는 "달콤하면서 동시에 쓸쓸하다"를 또박또박 설명하기 어렵지만, 음악은 그 묘한 감정을 한 번에 그려 낼 수 있어요. 모양으로 보여 주니까요.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봐요. 노래 속 슬픔은 누구 것일까요? 랭어의 대답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예요. 음악은 작곡가가 그날 느낀 기분을 적은 일기가 아니에요. 감정 그 자체의 모양을 그린 그림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작곡가가 누구인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하나도 몰라도 그 음악에 마음이 움직여요. 그림 속 풍경을 보려고 화가의 사생활을 알 필요가 없는 것과 같아요. 음악은 한 사람의 속풀이가 아니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감정의 지도였던 거죠.

랭어 이전에는 예술을 보통 두 가지로만 봤어요. 세상을 똑같이 베껴 그린 것이거나, 예술가가 자기 감정을 쏟아낸 것이거나요. 랭어는 여기에 셋째 길을 냈어요. 예술은 베끼는 것도 쏟아내는 것도 아니라, 말로는 못 잡는 마음의 모양을 보여 주는 '앎의 한 방식'이라는 거예요.
이 생각을 담은 책이 1942년에 나온 '새로운 방식의 철학'인데, 어려운 철학책치고는 드물게 널리 읽혔어요. 덕분에 랭어는 예술을 다루는 미학과, 마음을 다루는 철학 양쪽에 오래 영향을 남겼어요.

수전 랭어는 음악이 감정의 이름을 말해 주는 게 아니라 감정이 움직이는 모양을 그려 준다고 봤어요. 말은 구슬을 한 줄로 꿰듯 차례차례 와닿지만, 음악은 얼굴이나 그림처럼 전체가 한꺼번에 와닿죠. 그래서 노래 속 슬픔은 작곡가의 것도 내 것도 아닌,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감정의 모양이에요. 다음에 어떤 곡에 가슴이 먹먹해지면, 그건 그 음악이 내 마음의 생김새를 소리로 그려 보여 준 순간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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