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슬픈 영화에서 음악이 흐르면 코끝이 찡해진 적 있죠?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음악은 "이제 슬퍼하세요"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가사도 없이 그냥 낮은 음들이 천천히 흐를 뿐인데, 우리 마음은 신기하게도 그 뜻을 정확히 알아들어요.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말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막상 입이 막히는데, 음악은 어떻게 우리 마음속을 그렇게 잘 건드릴까요. 바로 이 질문을 평생 붙잡고 파고든 사람이 미국의 철학자 수전 랭어예요. 1895년부터 1985년까지, 아흔 살까지 산 사람이고, 미국에서 철학 교수로 자리 잡은 몇 안 되는 초기 여성 학자 중 한 명이었어요.

랭어는 우리가 뜻을 주고받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라고 봤어요. 어려운 말로 풀기 전에, 익숙한 장면부터 그려 볼게요.
첫 번째는 '말'이에요. 말은 레고 블록 같아요. 단어를 하나씩 순서대로 끼워야 뜻이 완성돼요. "나는" "배가" "고파요" 이렇게요. 순서를 섞어 버리면 뜻이 무너지죠. 사전도 있고 문법도 있어서, 한 조각씩 또박또박 풀어 설명할 수 있어요. 랭어는 이런 걸 '하나씩 풀어 가는 신호'라고 불렀어요.
두 번째는 '그림이나 음악' 같은 거예요. 이건 사진 한 장과 비슷해요. 노을 진 바다 사진을 보면, 색과 빛과 분위기가 한꺼번에 통째로 와닿잖아요. "먼저 주황색을 보고, 그다음 파도를 보세요" 하고 순서대로 읽는 게 아니에요. 한 방에 전체가 느껴져요. 랭어는 이런 걸 '통째로 보여 주는 신호'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랭어의 진짜 생각이 나와요. 그는 예술이 바로 이 '통째로 보여 주는 신호'라고 했어요.
무슨 뜻일까요. 우리 마음은 가만히 멈춰 있지 않아요. 기쁨이 확 솟았다가 천천히 가라앉고, 불안이 조였다가 풀리고, 그리움이 밀려왔다 빠져나가요. 마치 파도처럼 오르락내리락 모양을 가지고 움직이죠.
랭어는 음악이 바로 그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을 소리로 똑같이 그려 낸 거라고 봤어요. 음이 점점 높아지며 부풀다가 뚝 떨어지는 흐름이, 우리 마음이 설렜다가 가라앉는 흐름과 닮은 거예요. 그래서 슬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도, 음악의 '모양'만으로 우리는 슬픔을 알아봐요. 닮은 모양을 알아보는 거죠. 그가 남긴 유명한 말로 옮기면, 예술은 '느낌의 모양을 담은 형태'예요.

랭어 이전에는 이런 생각이 흔했어요. 말로 또박또박 설명할 수 있는 것만 '제대로 아는 것'이고, 느낌이나 감정은 그냥 안개처럼 흐릿하고 말이 안 되는 거라고요.
그런데 랭어는 고개를 저었어요. 음악과 그림도 엄연히 '뜻을 담은 신호'라고요. 단지 말과 방식이 다를 뿐, 예술도 세상과 마음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거예요. 1942년에 낸 책 '새로운 방식의 철학'에서 이 생각을 풀어냈는데, 철학책치고는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에게 읽혔어요.
쉽게 말하면, 랭어는 예술의 자리를 한 칸 올려 준 사람이에요. "음악은 그냥 기분 좋으라고 듣는 거 아니야? 진짜 지식은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아니에요, 그것도 마음을 아는 진짜 방법이에요"라고 답한 거죠.

그래서 랭어의 이야기는 예술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아요. 결국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져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마음속 느낌을 말로 다 옮기지 못할 때가 많아요. 슬픈데 왜 슬픈지 설명이 안 되고, 벅찬데 적당한 단어가 없어요. 랭어는 바로 그 '말로 다 못 하는 마음'을, 인간이 예술이라는 방식으로 붙잡아 왔다고 봤어요. 그는 나이 들어서까지 사람의 느낌과 마음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파고든 큰 연구를 이어 갔어요. 그래서 그의 생각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미학뿐 아니라, 마음이 무엇인지 묻는 철학에도 영향을 남겼어요.

수전 랭어는 "마음으로는 아는데 말로는 못 하겠는" 그 흔한 순간을 진지하게 들여다본 철학자예요. 그는 뜻을 나누는 길이 두 갈래라고 봤어요. 말처럼 한 조각씩 풀어 가는 길, 그리고 음악이나 그림처럼 한꺼번에 통째로 와닿는 길이요. 예술은 두 번째 길이고, 우리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을 닮은 꼴로 그려 내기 때문에 말 없이도 느낌이 전해진다고요. 다음에 가사 없는 음악에 마음이 흔들릴 때, 그게 그냥 기분이 아니라 마음이 무언가를 알아보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랭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한 뼘 더 가까이 느껴질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