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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옷가게에 갔는데, 그 가게엔 딱 한 가지 몸을 기준으로 만든 자가 있다고 해 볼게요. 그 자에 맞으면 '정상', 안 맞으면 '뭔가 모자란 사람'이 됩니다. 키가 다르고 어깨가 다른 건 그냥 다른 건데, 자가 하나뿐이니까 누군가는 늘 '덜 된 쪽'이 되죠. 뤼스 이리가레라는 철학자가 평생 붙잡고 늘어진 장면이 바로 이거예요. 우리가 사람을 설명할 때 쓰는 자가, 알고 보면 한쪽 몸만 재도록 만들어진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요.

이리가레는 193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철학자이자 정신분석가예요. 정신분석가라는 건, 사람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상담과 이론으로 파고드는 사람을 말해요. 그는 당대 정신분석의 큰 스승이던 자크 라캉 밑에서 공부했어요. 그러다 1974년에 책 한 권을 내놓는데, 그 책이 스승의 학교에서 쫓겨나는 계기가 됩니다. 무슨 도발을 했길래 그랬을까요. 그가 한 일은 의외로 조용해요. 정신분석의 출발점인 프로이트를 '다시 읽은' 것뿐이거든요.

정신분석을 처음 세운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여자를 설명하면서 자주 '없음'이라는 말을 썼어요. 남자한테 있는 무언가가 여자에겐 빠져 있고, 그래서 여자는 그 빠진 것을 부러워하며 자란다는 식이었죠. 그는 여성의 마음을 '어두운 대륙', 그러니까 아직 아무도 못 들어가 본 캄캄한 땅이라고도 불렀어요. 정리하면 이래요. 남자가 기준이고, 여자는 거기서 뭔가를 뺀 존재. 아까 그 옷가게의 자가 떠오르지 않나요.

이리가레의 '다시 읽기'는 프로이트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낡은 요리법을 천천히 다시 읽다가 '어, 이 조리법은 처음부터 오븐이 집에 있다고 치고 쓴 거네' 하고 숨은 전제를 발견하는 일에 가까워요. 프로이트의 글을 한 줄씩 따라가면서, 그가 미처 말하지 않은 가정을 들춰내는 거죠. 그 가정이란, 사람의 표준은 남자 하나이고 여자는 그 표준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라는 생각이에요. 이리가레가 보기에 정신분석은 여자를 본 적이 없어요. 남자를 비춘 그림자를 여자라고 부른 거예요.

그가 1974년에 낸 책 제목이 '검경', 원어로는 스페쿨룸이에요. 검경은 몸속을 들여다볼 때 쓰는 오목한 의료 도구예요. 평평한 거울은 앞에 선 사람을 그대로 되비추기만 하죠. 남자가 서면 남자가, 그 옆 여자는 남자의 짝으로만 보여요. 이리가레는 평평한 거울 말고 오목거울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똑같이 되비추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안 보이던 안쪽을 보게 해 주는 도구요. 여자를 '남자가 아닌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보려면, 거울부터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이리가레가 끝까지 붙든 두 단어가 성차와 언어예요. 성차는 남자와 여자가 그냥 다르다는 사실이에요. 한쪽이 기준이고 다른 쪽이 모자란 게 아니라요.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은 어떤가요. '사람'이라고 말하면 은근히 남자가 기본값으로 떠오르도록 짜여 있어요. 그래서 여자는 자기를 설명할 자기만의 말을 못 가진 채, 늘 남의 자로 잰 결과로만 불립니다. 이리가레의 비판은 정신분석 한 분야에서 멈추지 않아요. 서양 철학이 오래 '중립적인 진리'라고 믿어 온 자가, 사실은 한쪽에서만 잰 자일 수 있다는 데까지 닿아요.

이리가레는 프로이트를 미워해서 부순 게 아니라, 천천히 다시 읽어서 숨은 전제 하나를 끄집어냈어요. 사람의 표준이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거기서 뺀 존재라는 전제요. 그가 남긴 질문은 단순해서 오히려 오래 남아요. 우리가 당연하고 공평하다고 여기는 기준은, 정말 모두를 잰 자일까요, 아니면 한 사람만 잰 자를 모두에게 들이댄 걸까요. 다음에 '정상'이라는 말이 나올 때, 그 자를 누가 만들었는지 한 번 되물어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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