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사람은 누구나"로 시작하는 문장을 배운 적 있죠.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사람'의 모습이 은근히 한쪽으로 기울어 있을 때가 있어요. 옛날 의학책의 인체 그림은 거의 남자 몸이었고, 자동차 충돌 안전을 시험하는 인형도 오랫동안 평균 남성 체격으로만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같은 사고에서도 여성이 더 크게 다친다는 연구가 나오기도 했죠. '기본값'이라는 자리에 슬쩍 남자가 들어가 있었던 거예요.
뤼스 이리가레라는 철학자는 이 의심을 몸이 아니라 '말'에까지 밀고 갔어요. 우리가 모두의 것이라 믿는 언어가, 사실은 남자를 기준으로 짜인 건 아닐까 하고요.

이리가레는 1930년에 벨기에에서 태어난 철학자예요. 원래는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정신분석가로 훈련받았어요. 그러다 1974년에 펴낸 책 한 권 때문에 스승들의 모임에서도, 대학에서 가르치던 자리에서도 밀려났어요. 그 책이 서양 학문이 여자를 어떻게 다뤄 왔는지를 정면으로 따졌거든요.
그가 평생 붙잡은 한마디가 '여성으로 말하기'예요. 어려워 보이지만 속뜻은 단순해요. 여자가 자기 경험을, 남이 정해 준 틀이 아니라 자기 식대로 말하는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왜 굳이 그런 말이 필요할까요. 이리가레는 정신분석학을 예로 들어요. 정신분석학을 세운 프로이트는 여자아이를 설명하면서 '남자에게 있는 것이 여자에겐 없다'는 식으로 풀었어요. 여자를 그 자체로 보지 않고, 뭔가 모자란 남자처럼 그린 거죠.
비유하면 이래요. 자가 딱 하나, 그것도 남자라는 자만 있는 거예요. 그 자 하나로 여자를 재니까, 여자는 늘 '없음'이나 '덜 됨'으로만 나와요. 키를 재는데 몸무게 저울만 들이미는 셈이라, 여자가 진짜 어떤 존재인지는 영영 안 잡혀요.

그래서 이리가레가 내놓은 열쇠말이 '성차', 곧 성의 차이예요. 여자를 남자의 결핍이나 복사본으로 보지 말고, 처음부터 다른 한 사람으로 보자는 거예요. 세상에 기준 하나와 그 그림자가 있는 게 아니라, 진짜로 둘이 있다는 거죠.
'여성으로 말하기'가 남자 기준 문법에 딱 안 맞는 것도 그래서예요. 하나로 딱 떨어지는 답 대신, 여러 갈래로 흐르고 겹치는 말이죠. 그의 유명한 책 제목이 "이 성은 하나가 아니다"인 것도 같은 뜻이에요. 여자라는 존재는 한 단어로 깔끔하게 가둘 수 없다는 거죠.

이건 여자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우리가 '중립'이라 믿는 기준 속에 사실은 누군가 한 사람의 시선만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묻는 일이에요. 교과서의 '사람', 회사의 '보통 직원', 통계 속 '평균인'이 누구를 머릿속에 두고 만든 말인지 한 번 더 보게 만들죠.
이리가레는 서양 철학이 플라톤부터 프로이트까지 줄곧 그 '하나의 기준'으로 돌아갔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가 한 일은 새 답을 외친 게 아니라, 답을 적는 종이 자체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고 알려 준 거예요.

이리가레의 '여성으로 말하기'는, 모두의 것인 줄 알았던 언어가 실은 남자를 기본값으로 깔고 있었다는 의심에서 출발해요. 여자를 모자란 남자로 재는 자 하나짜리 세상 대신, 둘이 나란히 있는 세상을 말하려 한 거죠. 다음에 '누구나'라는 말을 들으면, 그 '누구나' 안에 정말 모두가 들어 있는지 슬쩍 들여다보게 된다면, 이리가레의 물음을 이미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3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