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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거울 앞에 서면 거울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춰 줘요. 그런데 잠깐 이상한 거울을 하나 상상해 볼까요. 누가 앞에 설 때마다 그 사람을 조금 더 크고 멋지게 보이게 해 주는 거울이요. 거울 자신은 아무 표정도 없고, 그저 앞에 선 사람을 빛나게 해 주는 일만 해요. 거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죠. 중요한 건 거울 앞에 선 '그 사람'이니까요.
벨기에에서 1930년에 태어난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는 좀 이상한 말을 했어요. 서양의 철학과 학문이 수천 년 동안 여자를 바로 그 거울처럼 다뤄 왔다는 거예요. 무슨 뜻일까요?

옛날부터 많은 철학자와 학자들은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사실은 남자를 기준으로 두고 말했어요.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고 나서, 여자는 '남자가 아닌 것', '남자에게 없는 것을 가진 쪽'처럼 남자를 기준으로 빼서 정의했죠.
이리가레가 특히 따져 물은 사람은 마음을 연구한 정신분석학자들이었어요. 그들은 여자를 '뭔가 빠져 있는 존재', '모자란 쪽'으로 설명하곤 했거든요. 여자가 여자 그 자체로 어떤 존재인지는 묻지 않고, 늘 남자와 비교해서 '덜한 쪽'으로만 봤어요.
이게 바로 거울이에요. 남자가 자기를 들여다보면 '나는 온전하구나' 하고 확인하게 해 주는 거울. 여자는 자기 모습을 갖지 못하고, 남자를 비춰 주는 도구가 되어 버린 거죠.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을 돋보이게만 하다가 사라지는 조연처럼요.

이리가레는 1974년에 책을 한 권 냈어요. 제목이 좀 낯선데, '스페큘럼'이라는 말이 들어가요. 스페큘럼은 원래 의사가 몸속을 들여다볼 때 쓰는, 안으로 굽은 거울이에요.
왜 하필 굽은 거울이었을까요? 평평한 거울은 앞에 선 사람의 겉모습만 비춰요. 그래서 남자가 자기를 비추기에는 딱 좋죠. 하지만 평평한 거울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자리가 있어요. 굽은 거울이라야 그 가려진 안쪽까지 비출 수 있고요.
이리가레는 말한 거예요. 지금까지의 철학은 평평한 거울 같아서 남자만 비춰 왔다고. 여자를 여자로서 보려면 다른 종류의 거울, 휘어진 거울이 필요하다고요. 여자는 '남자가 못 가진 무엇'이 아니라, 그 자체로 들여다봐야 할 고유한 존재라는 뜻이었어요.
이 책 때문에 이리가레는 큰 대가를 치렀어요. 그를 가르치던 정신분석 모임에서 쫓겨났고, 대학에서 가르치던 자리도 잃었거든요. 그만큼 당시 학자들에게 불편한 말이었던 거죠.

이리가레는 언어학도 공부한 사람이라, 우리가 쓰는 말 자체도 유심히 들여다봤어요. 그러다 한 가지를 발견했죠. 말과 문법조차 남자를 기본값으로 두고 짜여 있다는 거예요.
생각해 보면 그래요. 어떤 직업이나 사람을 통째로 가리킬 때, 많은 언어가 남자를 가리키는 말을 '대표 선수'로 써요. 여자는 거기에 표시를 하나 더 붙여야 비로소 드러나고요. 늘 남자가 기준이고 여자는 예외가 되는 셈이죠.
이리가레가 평생 매달린 주제를 어려운 말로는 '성차', 그러니까 성의 차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그가 말한 차이는 '여자가 남자만큼 똑같아지자'는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반대예요. 여자를 남자와 똑같은 틀에 맞추지 말고, 서로 다른 두 존재가 각자의 모습 그대로 인정받자는 거였죠. 한쪽을 기준 삼아 다른 쪽을 재단하지 않는 세상을 그린 거예요.

이리가레의 이야기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핵심은 단순해요. '누구를 기준으로 두고 세상을 설명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죠.
한쪽을 기준으로 정해 두면, 다른 쪽은 늘 '그 기준에서 모자란 것'으로만 보이게 돼요. 그건 여자와 남자 사이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학교에서, 일터에서, 우리는 종종 누군가를 '기본', 누군가를 '예외'로 나누곤 하니까요. 이리가레는 그 익숙한 나눔을 멈추고, 거울 노릇을 하던 쪽도 자기 얼굴을 가질 수 있게 하자고 말한 거예요.

뤼스 이리가레는 서양 철학이 오랫동안 여자를 남자를 비추는 거울처럼 다뤄 왔다고 봤어요. 여자를 '남자가 아닌 것', '모자란 쪽'으로만 설명해 온 거죠. 그는 평평한 거울로는 보이지 않는 자리를 비추는 굽은 거울처럼, 여자를 그 자체로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또 우리가 쓰는 말조차 남자를 기본값으로 둔다는 걸 짚으며, 한쪽을 기준 삼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존재를 함께 인정하는 길을 찾으려 했고요. 다음에 누군가를 '기준'과 '예외'로 나누고 싶어질 때, 이리가레의 거울 이야기를 한 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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