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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누가 "여자라는 성은 하나가 아니에요"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돼요. 하나가 아니면 둘일까, 셋일까 싶죠. 그런데 이 말을 꺼낸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가 하고 싶었던 건 숫자 세기가 아니에요. "세상을 재는 자가 딱 하나뿐인데, 그 자가 알고 보면 남자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이야기예요.
신발 가게를 하나 떠올려 볼게요. 문 앞에 "여기 신발은 누구 발에나 맞아요"라고 적혀 있어요. 그런데 막상 신어 보면 딱 한 가지 발 모양에만 맞고, 나머지 사람은 발을 욱여넣어야 해요. 이리가레는 서양 사람들이 오랫동안 생각해 온 방식이 이 가게와 닮았다고 봤어요. "누구에게나 맞는다"고 하면서 사실은 한쪽에게만 맞는 자를 썼다는 거죠.

뤼스 이리가레는 1930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철학자예요. 철학만 공부한 게 아니라 정신분석과 언어학까지 파고들어, 학위를 여러 개 받았어요. 그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이끌던 모임에도 속해 있었죠.
그런데 1974년에 펴낸 책에서 "정신분석이 여자를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가 그 모임에서 쫓겨났어요. 스승의 울타리를 잃는 일이었지만, 이리가레는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1977년에 낸 책 제목이 바로 '하나가 아닌 성'이에요.

이리가레가 가장 답답해한 건 이거예요. 서양 철학은 2000년 넘게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물어 왔는데, 그 "사람"의 기본 모습이 늘 남자였다는 거예요. 남자는 그냥 "사람"이고, 여자는 "남자가 아닌 쪽" "남자에게 있는 걸 못 가진 쪽"으로만 설명됐어요.
키를 잴 때 줄자 눈금이 어느 한 사람 키에만 맞춰져 있다고 해 볼게요. 그 사람은 정확히 재지지만, 다른 사람은 늘 "기준보다 모자란 만큼"으로만 나와요. 여자는 이런 식으로 줄곧 "모자란 남자" "빠진 게 있는 존재"로 그려졌다는 게 이리가레의 지적이에요. 여자를 여자 그 자체로 본 적이 없다는 거죠.
특히 그는 프로이트와 라캉을 겨눴어요. 이들이 여자를 "무언가 없는 사람"으로 설명한 게, 사실은 남자 자를 들이댄 결과일 뿐이라고 봤거든요.

이리가레가 언어학을 공부한 게 여기서 빛을 발해요. 그는 우리가 쓰는 말 자체에 그 한쪽짜리 자가 숨어 있다고 봤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도 사람 전체를 가리킬 때 한쪽 성을 대표로 내세우곤 해요. 무리를 부를 때 한쪽을 슬쩍 기본값으로 두는 말투들이 있죠. 말은 공기 같아서, 너무 익숙하면 그 안에 어떤 치우침이 들었는지 잘 안 느껴져요. 이리가레는 바로 그 안 보이는 치우침을 끄집어내 보여 주려 했어요.

이제 제목으로 돌아와요. '하나가 아닌 성'에는 두 가지 뜻이 겹쳐 있어요.
첫째, 여자는 그 하나뿐인 자에 "한 개의 성"으로 깔끔하게 끼워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남자 모양 자로는 여자가 제대로 세어지지 않아요. 그러니 셈에 들어가는 그 하나가 아닌 거죠.
둘째, 여자라는 성은 원래 하나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이리가레는 여자의 몸과 경험이 한 점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퍼져 있다고 봤어요. 굳이 하나로 묶어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또 그 한쪽짜리 자를 들이대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답을 하나로 못 박지 않아요. "여자란 이거다"라고 새 정의를 내리는 대신, 자가 하나뿐이라는 생각부터 의심하자고 말해요.

이리가레의 이야기가 멀게 들릴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맞는다"는 말 뒤에 사실은 한쪽 기준만 들어 있는 경우는 지금도 흔해요. 자동차 안전을 시험하는 충돌 인형이 오랫동안 남자 평균 몸으로만 만들어졌던 일을 떠올려 보세요. "사람"을 위한다면서 정작 한쪽 몸만 기준으로 삼았던 거죠. 이리가레가 50년 가까이 전에 던진 질문이 여기서 다시 살아나요.

이리가레의 '하나가 아닌 성'은 어렵게 들리지만 뼈대는 단순해요. 세상을 재는 자가 하나뿐이고 그게 남자 모양이라면, 여자는 늘 "모자란 쪽"으로만 보이게 된다는 거예요. 제목의 '하나가 아닌'은 여자가 그 자에 한 개로 세어지지도 않고, 또 하나로 묶이지도 않는다는 두 뜻을 함께 담아요. 그가 우리에게 준 건 새 정답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에요. "이 자, 정말 누구에게나 맞나요?" 이 질문 하나만 손에 쥐어도, 익숙하던 많은 말이 조금 달리 들리기 시작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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