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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경제라고 하면 보통 무엇이 떠오르나요. 주가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래프,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 월급이 들어오는 통장 같은 것들이죠. 우리는 경제를 '돈이 도는 시장'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워요.
그런데 1947년에 태어난 미국의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좀 다른 곳을 봐요. 시장이라는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편 어두운 곳을 가리키죠. 거기엔 뉴스에 잘 안 나오지만 시장을 움직이게 해 주는 것들이 잔뜩 숨어 있거든요. 프레이저는 일흔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숨은 뒷방'을 들여다본 비판이론가예요.

작은 식당을 하나 떠올려 볼게요. 사장님은 재료값도 내고 직원 월급도 줘요. 그런데 사장님이 돈을 한 푼도 안 내고 쓰는 것들이 있어요. 직원을 낳고 키워 준 부모님의 돌봄, 채소가 자라게 해 준 흙과 비, 도둑이 들면 달려와 줄 경찰과 도로 같은 공공의 힘이죠.
프레이저는 자본주의 전체가 바로 이런 식이라고 말해요. 시장은 세 가지 곳에 크게 기대고 있어요. 첫째는 사람을 먹이고 재우고 보살피는 '돌봄', 둘째는 자원을 내주는 '자연', 셋째는 질서를 지켜 주는 '정치와 공공의 힘'이에요. 그런데 시장은 이것들을 마치 공기처럼 공짜로 가져다 쓰면서, 그 값은 제대로 쳐주지 않아요.

여기서 진짜 문제가 시작돼요. 공짜로 쓰기만 하고 채워 넣지 않으면 그 바탕이 점점 닳아 없어지거든요.
돌봄을 생각해 봐요. 시장은 더 많이 일하라고 사람들을 끌어내요. 그러다 보면 아이를 돌보고 아픈 사람을 챙길 시간과 힘이 바닥나죠. 자연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캐내고 태우기만 하면 숲과 공기가 망가져요. 공공의 힘도 자꾸 '돈 되는 쪽'으로만 쓰면 사람들이 정치를 못 믿게 되고요.
프레이저는 이걸 두고 자본주의가 '자기가 딛고 선 땅을 스스로 갉아먹는다'고 표현했어요. 자기 몸을 뜯어 먹는 것 같다고 해서 '식인 자본주의'라고도 불렀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제 위기, 그러니까 돈이 안 도는 위기 말고도, 돌봄이 무너지는 위기, 자연이 망가지는 위기, 정치를 못 믿는 위기가 그 밑에 숨어 있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숨은 위기'예요.

프레이저가 유명해진 또 하나의 생각이 있어요. 세상의 불공평을 두 가지로 나눠 본 거예요.
하나는 '재분배' 문제예요. 누구는 너무 많이 갖고 누구는 너무 적게 갖는, 돈과 자원이 한쪽으로 쏠린 불공평이죠. 다른 하나는 '인정' 문제예요.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한 수 아래로 보고 무시하는, 존중받지 못하는 불공평이에요.
예를 들어 집안일을 도맡아 온 여성을 떠올려 봐요. 일한 만큼 돈을 못 받는 건 재분배의 문제고, 그 일을 '진짜 일이 아니'라고 깔보는 건 인정의 문제예요.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이 이 둘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어요. 돈만 똑같이 나눠도, 무시하는 눈길이 그대로면 정의는 반쪽이니까요.

이 생각이 와닿는 건, 오늘 우리가 겪는 일들이 따로 노는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에요. 기후 위기, 돌봄에 지친 사람들, 정치에 대한 불신은 각각 다른 사건 같지만, 프레이저는 이것들이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라고 봐요. 시장이 바탕을 갉아먹은 결과라는 거죠.
그래서 그는 한 가지만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해요. 돈만 나눠도, 환경만 챙겨도 부족하다고요. 우리가 무엇에 기대어 살고 있는지를 통째로 다시 봐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그 바탕을 다시 채워 넣는 일은 누가,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낸시 프레이저는 경제를 '돈이 도는 시장'으로만 보지 말고, 그 뒤에 숨은 돌봄과 자연과 공공의 힘을 함께 보자고 한 철학자예요. 시장은 이것들을 공짜로 쓰면서 닳게 만들고, 그래서 경제 위기 밑에는 돌봄, 자연, 정치의 숨은 위기가 함께 깔려 있어요. 또 그는 불공평을 돈의 문제(재분배)와 존중의 문제(인정)로 나눠, 정의와 페미니즘은 이 둘을 같이 풀어야 한다고 봤죠. 오늘 우리가 겪는 여러 위기가 사실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 그것이 프레이저가 남긴 기억할 만한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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