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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큰 회사를 떠올려 볼게요. 건물 입구에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 있고, 광고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웃고 있어요. 여성 임원도 많고, '우리는 차별하지 않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죠. 겉보기엔 참 멋진 회사예요.
그런데 그 회사에서 청소하고 물건 나르는 사람들의 월급은 10년째 거의 그대로예요. 정규직 자리는 점점 줄고, 공장은 인건비가 싼 나라로 옮겨 가요. 분명 '진보적'이고 '열려 있는' 회사 같은데, 정작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진 거예요.
이 묘한 풍경을 콕 집어 설명한 사람이 바로 낸시 프레이저예요. 1947년에 태어난 미국의 비판 이론가인데, 이런 상태에 '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이름을 풀기 전에, 프레이저가 늘 쓰고 다니는 두 개의 안경부터 봐야 해요.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두 가지로 나눠서 봐요.
첫째는 '재분배'예요. 쉽게 말해 돈과 자원을 어떻게 나누느냐의 문제예요. 누가 얼마를 벌고, 일자리가 안정적인지, 가난한 사람을 사회가 받쳐 주는지 같은 거죠. 빵을 공평하게 나누는 문제라고 보면 돼요.
둘째는 '인정'이에요.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느냐의 문제예요. 여성이라서, 피부색이 달라서, 사랑하는 사람이 동성이라서 깔보지 않는 것. 빵의 크기와는 다른, 사람대접의 문제예요.
프레이저의 핵심 주장은 이거예요. 이 두 가지는 어느 하나로 합칠 수 없고, 둘 다 있어야 진짜 정의라는 거죠. 존중받지만 굶는 것도, 배는 부르지만 무시당하는 것도 반쪽짜리예요.

이제 '진보적 신자유주의'를 풀어 볼게요. 단어가 어렵지만, 사실은 안경 두 개 이야기예요.
'진보적'인 쪽은 인정 안경에 해당해요. 다양성, 여성의 권리, 소수자 존중 같은 좋은 가치들이죠. '신자유주의'는 재분배 안경 쪽인데, 시장에 최대한 맡기고 규제를 풀고 복지를 줄이는 경제 방식이에요.
프레이저가 본 일은, 이 둘이 묘하게 한 팀이 된 거예요. 월스트리트 같은 금융, 실리콘밸리 같은 기술 회사들이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진보적 간판을 달았어요. 그러면서 경제는 평범한 사람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굴러갔고요. 인정은 챙기는 척하면서 재분배는 외면한 거죠. 좋은 가치 하나가,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경제의 포장지로 쓰인 셈이에요.

프레이저는 페미니즘을 오래 연구한 사람이라, 여기서 특히 아프게 말해요. 그는 '1퍼센트를 위한 페미니즘'이라는 표현을 써요.
무슨 뜻이냐면, 이미 잘나가는 소수 여성이 회사 꼭대기 자리, 그러니까 '유리천장'을 깨고 임원이 되는 것만 성공이라고 떠받드는 흐름을 가리켜요. 그건 분명 멋진 일이지만, 그 아래에서 저임금으로 일하는 수많은 여성의 삶은 그대로거든요. 꼭대기 한 명의 승진이, 마치 모두의 승리인 것처럼 포장된 거예요.
프레이저는 이게 위험하다고 봤어요. 존중은 외치지만 살림은 못 펴 주니, 경제적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화가 나고 등을 돌려요. 그 분노가 더 거친 정치로 흘러가기도 하고요. 그는 2017년 1월에 쓴 글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을 바로 이 진보적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로 읽었어요.

프레이저가 다양성이나 여성 권리를 깎아내린 건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예요. 그는 인정이라는 좋은 가치가 신자유주의 경제와 떨어져 나와야 한다고 말해요.
쉽게 말하면, 존중도 챙기고 빵도 공평하게 나누는 길을 같이 가자는 거예요. 안경 한쪽만 쓰지 말고 두 쪽 다 쓰자는 거죠. 다양성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일자리와 복지도 두텁게 하는 정치, 그는 이걸 새로운 방향으로 제안했어요.

낸시 프레이저는 정의를 '재분배'와 '인정' 두 안경으로 봤어요. '진보적 신자유주의'는 인정이라는 좋은 가치가, 평범한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포장지로 쓰인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무지개 깃발은 화려한데 월급봉투는 얇은 그 풍경이죠. 그래서 그는 묻습니다. 존중만으로 충분한가요, 빵도 공평하게 나누고 있나요. 다음에 '다양성'을 자랑하는 간판을 볼 때, 그 안의 살림살이는 어떤지 한 번 더 들여다보게 하는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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