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생일에 친구들을 불러서 케이크를 자로 잰 듯 똑같은 크기로 잘라 줬다고 해 봐요. 그런데 한 친구가 시무룩해요. 케이크는 똑같이 받았는데도요. 알고 보니 다 같이 게임 규칙을 정할 때 그 친구한테는 한 번도 의견을 안 물어봤더라고요. 또 다른 친구는 평소에 "넌 좀 이상해"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마음이 잔뜩 상해 있었고요.
이상하죠. 분명 똑같이 나눠 줬는데 왜 누군가는 여전히 억울해할까요. 공정하다는 게 정말 "똑같이 나누기" 하나로 끝나는 걸까요. 바로 이 질문을 평생 붙잡고 늘어진 사람이 있어요.

낸시 프레이저는 1947년에 태어난 미국의 철학자예요. 세상이 공정한지 따질 때 사람들은 보통 "돈이나 물건을 얼마나 공평하게 나눴나" 하나만 봐요. 프레이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어요. 공정함을 재는 잣대가 하나가 아니라 셋이라고 본 거예요. 마치 키 하나만 재서는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고, 키와 몸무게와 시력을 함께 봐야 하는 것처럼요.
그가 말한 세 가지 잣대를 하나씩 볼게요. 어렵지 않아요. 방금 그 생일 파티 이야기 안에 셋이 다 숨어 있었거든요.

첫 번째 잣대는 재분배예요. 말이 어렵지, 그냥 "있는 것을 어떻게 나누느냐"예요. 케이크를 똑같이 자르는 일, 용돈이나 일자리나 돈이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게 하는 일이죠.
누가 너무 적게 가져서 끼니를 거르거나 학교를 못 다닌다면, 그건 누가 봐도 불공정해요.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잣대 하나로 정의를 이야기했어요. 가난한 쪽에 더 돌아가게 하면 세상이 공정해진다고요. 맞는 말이에요. 하지만 프레이저는 이것만으로는 빈틈이 생긴다고 봤어요.

두 번째 잣대는 인정이에요. 케이크는 똑같이 받았는데 "넌 좀 이상해"라는 말에 상처받은 친구, 기억나죠. 가진 게 적어서가 아니라 무시당해서 억울한 거예요.
피부색이 다르다고, 쓰는 말이 다르다고, 또는 여자라서 남자라서 은근히 깔보는 일. 돈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상처죠. 프레이저는 사람을 똑같이 귀한 한 명으로 존중하는 것 자체가 정의의 한 축이라고 봤어요. 아무리 공평하게 나눠 줘도, 한쪽을 계속 "급이 낮은 사람" 취급한다면 그건 공정한 세상이 아니에요.

여기서 프레이저가 나중에 더한 세 번째 잣대가 흥미로워요. 바로 대표예요. 게임 규칙을 정하는 자리에 아예 못 낀 친구를 떠올려 보세요. 케이크도 똑같이 받았고 무시당하지도 않았는데, 규칙을 정할 때 그 친구 의견은 처음부터 빠져 있었어요.
세 번째 잣대는 "누가 결정하는 자리에 들어가느냐"예요. 더 깊게는 "애초에 누구를 우리 식구로 쳐 주느냐"의 문제이기도 해요. 나눌 사람 명단에 이름조차 없다면, 나누기 싸움을 아무리 잘해 봐야 소용이 없으니까요. 프레이저는 이 정치적인 차원을 따로 떼어 세 번째 자리에 단단히 놓았어요.

프레이저가 이 틀을 벼린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한동안 사람들은 여성 차별 같은 문제를 "무시당하는 문제", 즉 인정의 문제로만 보려 했어요. 그러면서 임금이나 일자리 같은 돈 이야기는 슬그머니 뒤로 밀렸고요.
프레이저는 그건 반쪽짜리라고 봤어요. 여성 문제는 같은 일을 하고도 적게 받는 돈 문제이면서, 동시에 얕보임의 문제이고, 또 중요한 결정 자리에서 자꾸 밀려나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거죠. 세 가지가 한데 얽혀 있어서, 한 가지 잣대만으로는 절대 풀리지 않는다고요.

프레이저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예요. 셋 중 하나만 챙기면 나머지에서 꼭 구멍이 난다는 것. 돈만 나누고 무시를 내버려 두면 마음이 상하고, 존중만 하고 돈을 안 나누면 배가 고프고, 둘 다 챙겨도 결정하는 자리에 못 끼면 다음번에 또 밀려나요.
그가 꿈꾼 세상은 모두가 똑같이 귀한 한 명으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울려 사는 곳이에요. 이 하나를 위해 세 가지 잣대가 동시에 필요하다고 본 거죠.

공정함은 "똑같이 나누기" 하나로 끝나지 않아요. 프레이저는 정의를 세 개의 잣대로 봤어요. 가진 것을 나누는 재분배, 서로 얕보지 않는 인정, 결정하는 자리에 끼워 주는 대표. 케이크를 똑같이 잘라 줬는데도 누군가 여전히 서운하다면, 아마 나머지 두 잣대 중 하나가 빠져 있을 거예요. 다음에 "이거 공정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잣대 하나만 들이대고 있지는 않은지 세 가지를 나란히 떠올려 보세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3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