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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카페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잠깐 가방 좀 봐 주실래요?" 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적, 한 번쯤 있을 거예요. 가만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에요. 이름도 모르고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한테 내 물건을 맡기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매일 이렇게 누군가를 믿어요. 가게 주인이 거스름돈을 제대로 줄 거라 믿고, 친구가 약속 장소에 나올 거라 믿죠.
이 '믿음'은 대체 어디서 올까요? 누가 가르쳐 줘서일까요, 아니면 우리 머릿속에 원래 들어 있는 무언가 때문일까요? 이 물음을 평생 파고든 철학자가 있어요. 바로 퍼트리샤 처칠랜드예요. 1943년에 태어나 지금까지도 활동하는 분이에요.

옛날 철학자들은 '사람은 왜 착하게 살아야 할까', '옳고 그름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을 머릿속 생각만으로 풀려고 했어요. 책상에 앉아 곰곰이 따지는 방식이죠. 그런데 처칠랜드는 다른 길을 택했어요. "마음이 뇌에서 나오는 거라면, 도덕도 뇌를 들여다봐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이렇게 철학의 오래된 질문을 뇌과학으로 풀어 보려는 분야를 신경철학이라고 불러요. 처칠랜드는 1986년에 바로 그 이름을 단 책을 펴내며 이 길을 처음 닦은 사람 중 한 명이에요. 철학자가 뇌 사진과 실험 결과를 함께 펼쳐 놓는 모습이, 당시엔 꽤 낯설었답니다.

그가 특히 눈여겨본 건 옥시토신이라는 물질이에요. 우리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아주 작은 화학물질인데, 이름은 어렵지만 하는 일은 따뜻해요. 엄마가 아기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 이 옥시토신이 듬뿍 나와요. 그래서 '포옹 호르몬'이라는 별명까지 붙었죠.
재미있는 건, 옥시토신이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쥐나 양 같은 포유류 엄마들도 새끼를 돌볼 때 이 물질이 나와요. 새끼를 핥아 주고, 곁을 지키고, 위험이 오면 막아서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스위치 같은 거예요. 몸을 편안하게 풀어 주고 곁에 있는 상대를 덜 경계하게 만들죠.

처칠랜드의 핵심 생각은 여기예요. 도덕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규칙이 아니라, 새끼를 돌보던 뇌의 장치에서 천천히 자라났다는 거예요. 그는 2011년에 펴낸 책에서 이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 놓았어요.
원래 포유류의 뇌는 '내 새끼를 지키자'는 쪽으로 만들어졌어요. 옥시토신은 그 돌봄의 시작 버튼 같은 거고요. 그런데 이 돌봄의 울타리가 조금씩 넓어졌다는 게 처칠랜드의 그림이에요. 내 새끼에서 내 가족으로, 가족에서 친구로, 친구에서 잘 모르는 이웃으로요. 처음 보는 사람의 가방을 봐 주는 마음도, 따지고 보면 새끼를 품던 그 오래된 회로가 멀리까지 뻗어 나온 끝자락인 셈이에요.

이 생각이 좋은 이유는, 도덕을 무섭거나 거창한 것으로만 보지 않아도 되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착하게 사는 일이 누가 내려 준 명령이라서가 아니라, 서로 돌보고 믿도록 만들어진 우리 몸의 성질에서 나온다고 보면, 도덕이 한결 가깝고 자연스러운 것이 돼요.
다만 조심할 점도 있어요. 옥시토신 하나가 모든 착한 행동을 만든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람의 믿음에는 경험도, 배움도, 그날의 기분도 함께 섞여요. 실제로 옥시토신을 연구한 실험들도 결과가 딱 떨어지지 않고 엇갈릴 때가 많아요. 처칠랜드 자신도 옥시토신은 도덕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분명히 말해요.

처칠랜드는 마음을 뇌에서 찾는 신경철학의 길을 연 철학자예요. 그는 우리가 서로를 믿는 마음의 뿌리를, 새끼를 돌보던 포유류의 뇌와 옥시토신이라는 작은 물질에서 찾았어요. 도덕은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 아니라, 돌봄에서 시작해 점점 넓어진 마음일지 모른다는 거예요. 다음에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거나 받을 때, 그 안에 아주 오래된 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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