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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의 장난감을 슬쩍 뺏으면 마음 한구석이 콕 찔리죠. 누가 옆에서 일러 주지 않아도 "이건 좀 아닌데" 하는 느낌이 저절로 올라와요. 반대로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요.
오랫동안 사람들은 이 느낌이 우리 바깥 어딘가에서 왔다고 생각했어요. 하늘이 정해 준 규칙이거나, 어른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넣어 준 약속이라고요. 옳고 그름은 정답지처럼 어딘가에 적혀 있고, 우리는 그걸 외워서 따를 뿐이라는 거죠.
그런데 1943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한 철학자는 질문을 거꾸로 뒤집었어요. "그 찌릿한 느낌, 혹시 우리 뇌가 직접 만들어 내는 거 아닐까?"

퍼트리샤 처칠랜드는 좀 별난 철학자예요. 보통 철학자는 조용한 방에서 생각만으로 답을 찾으려 하는데, 그는 "마음이 궁금하면 마음이 사는 집, 그러니까 뇌를 열어 봐야 한다"고 했어요. 1986년에 낸 책 제목이 아예 '신경철학'이었죠. 뇌세포를 뜻하는 신경과 철학을 한데 붙인 말이에요. 그때만 해도 "철학에 웬 뇌 이야기냐"며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웃했어요.
세월이 흘러 2011년, 그는 '브레인트러스트'라는 책에서 가장 큰 질문 하나에 도전해요. 바로 도덕이에요. 착하다, 나쁘다 하는 그 마음이 정말 어디서 오는 걸까요?

처칠랜드의 답은 뜻밖에도 '엄마와 아기'였어요.
아주 먼 옛날, 우리 같은 포유류, 그러니까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동물에게 큰 변화가 생겼어요. 새끼를 낳고 그냥 두는 게 아니라, 따뜻하게 품고 젖을 물리고 위험에서 지키기 시작한 거예요. 이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에요. 내 배가 고프고 내가 졸려도 새끼부터 챙겨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뇌가 바뀌어야 했어요. 원래 "나 하나 살자"였던 마음이 "이 작은 녀석도 나만큼 소중해"로 넓어진 거죠. 처칠랜드는 바로 이 돌봄의 회로가 도덕의 첫 씨앗이라고 봤어요. 도덕은 처음부터 거창한 규칙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누군가를 아끼고 지키려는 마음에서 천천히 자라났다는 거예요.

이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건 뇌 속을 도는 화학물질이에요. 그중 대표 선수가 옥시토신이고요.
옥시토신을 마음과 마음을 붙이는 풀이라고 상상해 보세요. 엄마가 아기를 안고 젖을 먹일 때 이 물질이 뇌에서 왈칵 쏟아져요. 그러면 "이 작은 존재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는 느낌이 차오르죠. 친구와 꼭 안을 때,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도 비슷한 작동이에요.
신기한 건, 이 풀이 점점 더 넓은 사람에게 발린다는 점이에요. 처음엔 제 새끼한테만, 다음엔 짝한테, 그다음엔 가족과 친구한테, 마침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낯선 사람한테까지요. 멀리서 누가 다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움찔하잖아요. 그게 이 풀이 아주 멀리까지 발린 흔적이에요.

말로만 들으면 잘 안 믿기죠. 그래서 처칠랜드가 즐겨 드는 예가 들쥐예요.
초원에 사는 들쥐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곁을 지켜요. 둥지도 같이 짓고 새끼도 함께 키우죠. 그런데 산에 사는 비슷하게 생긴 들쥐는 짝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금세 제 갈 길을 가요. 두 들쥐의 뇌를 들여다봤더니, 평생 곁을 지키는 들쥐의 뇌에는 옥시토신을 받아들이는 자리가 훨씬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어요.
거의 똑같이 생긴 들쥐인데 '곁을 지키는 마음'의 차이가 뇌 속 부품 수에서 갈린 거예요. 누군가에게 정을 붙이는 일이 영혼의 신비한 능력이 아니라, 뇌가 실제로 만들어 내는 작동이라는 걸 보여 준 셈이죠.

옛 철학자 중에는 도덕이 차가운 이성에서 나온다고 본 사람도 많았어요. 감정은 믿을 게 못 되니, 머리로 따져 만든 완벽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거죠.
처칠랜드는 여기에 고개를 저어요. 도덕의 뿌리는 차가운 계산이 아니라 따뜻한 돌봄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덕은 하늘에서 떨어진 완벽한 규칙집이라기보다, 여럿이 부대끼며 살아가려고 뇌가 오랜 세월 풀어 온 문제 풀이에 가까워요. 상황이 바뀌면 답도 새로 고민해야 하고, 배우고 다듬어 갈 수도 있는 거죠.

여기서 오해하기 쉬워요. "도덕이 결국 뇌 속 화학물질일 뿐이라면, 다 가짜 아냐?"
처칠랜드는 아니라고 해요. 사랑이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해서 사랑이 가짜가 아니듯, 도덕도 그래요. 뇌에서 일어난다는 건 우리 안에 진짜로 들어 있다는 뜻이지, 없는 걸 꾸며 냈다는 뜻이 아니거든요. 오히려 도덕이 먼 하늘이 아니라 내 몸 안에서 자란 마음이라면, 그건 누구나 품고 있는 더 가까운 무엇이 되죠.

옳고 그름을 느끼는 마음은 하늘이나 두꺼운 규칙책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새끼를 돌보던 포유류의 뇌에서 천천히 자라났어요. 옥시토신 같은 물질이 그 돌봄을 가까운 새끼에서 짝으로, 다시 친구와 낯선 사람에게로 넓혀 주고요. 퍼트리샤 처칠랜드의 이야기는 도덕이 신비한 명령이 아니라 우리 안에 실제로 들어 있는 마음이라는 걸 보여 줘요. 그렇다고 도덕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에요. 정답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니, 함께 더 잘 살아가려고 우리가 계속 고민하고 다듬어 가는 것, 그 점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지지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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