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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붐비는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발을 꾹 밟아요. 순간 욱하고 화가 올라오죠. 그런데 고개를 들어 보니 그 사람이 "어머, 정말 죄송해요" 하며 어쩔 줄 몰라 해요. 흔들리는 칸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진 거였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화가 스르르 가라앉아요.
똑같이 발이 아픈데, 왜 한쪽은 화가 나고 다른 쪽은 괜찮아질까요? 영국 철학자 피터 스트로슨은 바로 이 사소한 차이에서 아주 큰 이야기를 끌어냈어요. 그는 1919년부터 2006년까지 살면서, 우리가 쓰는 말과 생각의 뼈대를 다시 들여다본 사람이에요. 어려운 책을 여러 권 남겼지만, 오늘은 그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한 가지, 자유와 반응적 태도 이야기만 천천히 풀어 볼게요.

스트로슨이 마주한 건 철학에서 가장 오래된 골칫거리 중 하나였어요. "사람에게 정말 자유가 있을까" 하는 물음이요.
한쪽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요. 세상 모든 일은 앞선 원인 때문에 일어난다고요. 당구공이 다른 공에 맞아 굴러가듯, 우리 마음도 뇌 속 작용이 시켜서 움직이는 거라면, 내 선택도 사실은 처음부터 정해진 거잖아요. 도미노가 한 칸 쓰러지면 마지막 칸까지 차례로 넘어가는 것처럼요. 그럼 누가 나쁜 짓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가 되고, 칭찬도 비난도 의미가 없어져요.
다른 쪽은 아니라고, 사람에겐 진짜 자유가 있다고 맞서요. 무엇에도 매이지 않고 스스로 고르는 힘이 있다고요. 수백 년 동안 이 두 편은 서로를 증명하려다 지쳤어요. 자유가 있다 없다를 두고 끝없이 평행선을 달린 거죠.

스트로슨은 1962년에 쓴 짧은 글에서 묘한 제안을 해요. "자유가 있는지 없는지 증명하려 들지 말고, 우리가 실제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부터 보자"고요.
다시 발 밟힌 장면으로 가 볼게요. 우리가 화가 나는 건 사실 발이 아파서가 아니에요. 상대가 나를 함부로 대했다는 마음, 그 태도 때문이에요. 반대로 그 사람이 진심으로 미안해하면, 나를 무시한 게 아니란 걸 알기에 화가 풀려요.
이렇게 상대의 마음씨에 따라 우리 안에서 저절로 올라오는 감정들, 고마움 서운함 미움 용서 같은 것을 스트로슨은 반응적 태도라고 불렀어요. 누가 친절하면 고맙고, 일부러 못되게 굴면 밉고, 잘못을 빌면 마음이 누그러지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반응을 주고받으며 서로 얽혀 살아요.

재미있는 건, 우리가 이 반응을 스스로 거두기도 한다는 거예요.
세 살짜리 아이가 내 정강이를 발로 찼다고 진심으로 미워하진 않잖아요. "아직 어려서 그래" 하고 넘어가요. 누가 몽유병으로 자다가 팔을 휘둘러 나를 쳤다면, 그건 그 사람 탓이 아니라고 봐요. 또 친구가 깜빡 약속을 어겼는데 알고 보니 가족이 갑자기 아파 병원에 있었다면, 서운함이 금세 걱정으로 바뀌고요.
이럴 때 우리는 상대를 미워하는 대신, 한 발짝 떨어져 "무슨 사정이 있었을까" 살피는 눈으로 바꿔요. 스트로슨은 이걸 객관적 태도라고 했어요. 상대를 같이 화내고 고마워할 짝이 아니라, 가만히 관찰하고 보살필 대상으로 보는 거죠. 의사가 환자를, 어른이 떼쓰는 아기를 바라보듯이요.

여기서 스트로슨의 진짜 한 방이 나와요.
자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는 셈이에요. "모든 게 원인으로 정해져 있으니, 누구한테도 화내거나 고마워하지 마라. 다들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니까." 즉 세상 모든 사람을, 늘 객관적 태도로만 대하라는 거죠.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친구의 따뜻한 말에도 고마움을 느끼지 않고, 누가 나를 배신해도 아무렇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그저 관찰 대상으로만 보는 삶을 떠올려 보세요. 그건 사람 사이의 관계가 통째로 사라진 삶이에요. 우리는 그렇게 못 살아요. 반응적 태도는 우리가 기분 따라 켜고 끄는 스위치가 아니라, 사람으로 함께 사는 일 그 자체거든요.

스트로슨의 답은 "자유가 있다"도 "없다"도 아니에요. 그는 질문 자체를 살짝 옆으로 치워요.
설령 세상 모든 일이 원인으로 정해져 있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고마워하고 서운해하고 용서할 거예요. 그게 우리가 서로를 사람으로 대하는 방식이니까요. 책임이라는 것도 멀리 있는 어려운 증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매일 주고받는 반응적 태도 안에 이미 들어 있다는 거예요. 멀리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우리가 이미 발 딛고 사는 자리에 답이 있었던 셈이죠.
수백 년 묵은 다툼을, 그는 한쪽 편을 들어 이기는 대신 슬그머니 녹여 버린 거예요.

발을 밟혔을 때 상대의 태도에 따라 화가 났다 풀렸다 하는 그 평범한 마음이, 스트로슨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그는 자유가 있느냐 없느냐를 증명하려 들지 않고, 우리가 서로에게 보이는 고마움과 미움 같은 반응적 태도에서 출발했어요. 그리고 이 반응은 우리가 사람으로 함께 사는 한 끌 수 없는 것이라고 봤죠. 다음에 누군가에게 욱하거나 고마운 마음이 들 때, 그 작은 감정 속에 이미 책임과 관계의 뿌리가 들어 있다는 걸 한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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