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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철학 책을 펼치면 이상한 말이 자주 나와요. "당신이 보는 그 책상은 진짜 책상이 아니라 텅 빈 원자 덩어리일 뿐이에요."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은 사실 착각이에요." 세상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진짜가 숨어 있다는 식이죠. 마치 우리가 매일 속고 살았다는 듯이요.
영국 철학자 피터 스트로슨은 1919년부터 2006년까지 살면서, 이 흐름에 살짝 어깃장을 놓은 사람이에요. 그는 세상의 숨은 진짜를 폭로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했어요. 멀리 가지 말고, 발밑부터 보자는 거였죠.

이렇게 상상해 볼게요. 길이 구불구불한 오래된 동네가 하나 있어요. 어떤 사람은 "길이 엉망이니까 다 밀어 버리고 반듯하게 새로 설계하자"라고 해요. 또 어떤 사람은 "잠깐, 일단 지금 길이 어떻게 나 있는지부터 정확히 지도로 그려 보자"라고 해요.
스트로슨은 두 번째 사람이에요. 우리 머릿속에 이미 깔려 있는 '세상을 생각하는 기본 틀'을, 함부로 뜯어고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그려 보자는 거예요. 이걸 그는 기술적 형이상학이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기술은 기술자의 기술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대로 적어 둔다'는 뜻이에요. 반대로 세상의 틀을 새로 짜겠다고 덤비는 쪽은 교정적 형이상학이라고 불렀고요. 1959년에 낸 책 개체들에서 이 생각을 또렷하게 정리했어요.

그럼 우리 생각의 틀에서 가장 바닥에 깔린 건 뭘까요? 스트로슨은 '하나하나 콕 집을 수 있는 것', 곧 개체라고 봤어요.
길에서 강아지를 보고 "저 녀석"이라고 가리키죠. 그리고 다음 날 또 만나면 "어, 어제 그 녀석이네" 하고 알아봐요. 이렇게 무언가를 딱 하나로 집어내고, 하루나 십 년이 지나도 같은 것이라고 다시 찾아내는 능력. 스트로슨은 이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라고 했어요. 만약 어떤 것도 다시 알아볼 수 없다면, 세상은 그냥 매 순간 흩어지는 안개일 뿐일 테니까요.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개체는, 손에 잡히는 물체와 사람이라고 봤어요.

사람이라는 개체는 좀 특별해요. 우리는 한 사람을 두고 "키가 170센티미터야"처럼 몸에 대한 말도 하고, "지금 기분이 좋아"처럼 마음에 대한 말도 해요. 둘 다 똑같은 한 사람한테 하는 말이에요. 키를 재는 그 사람과 기분이 좋은 그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죠.
옛날 철학자 데카르트는 사람을 '몸'과 '마음' 두 조각으로 갈라놓고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스트로슨은 그렇게 나누는 순간, 떼어 놓은 둘을 다시 붙이기가 영영 어려워진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사람'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하나의 기본 단위로 두자고 했어요. 처음부터 몸이면서 동시에 마음인 존재, 그게 사람이라는 거예요.

스트로슨이 유명해진 건 말에 관한 짧은 글 하나 덕분이기도 해요. 이런 문장을 생각해 보세요. "지금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
문제가 있죠. 지금 프랑스에는 왕이 없어요. 그럼 이 문장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앞선 철학자 러셀은 "그런 왕이 아예 없으니, 이 말은 그냥 거짓"이라고 깔끔하게 정리했어요.
스트로슨은 1950년 글 지칭에 관하여에서 다르게 봤어요. 이 문장은 참도 거짓도 아니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말은 "프랑스에 왕이 있다"는 걸 이미 바닥에 깔고 들어가거든요. 그 깔개가 빠지면, 참인지 거짓인지 따지는 일 자체가 헛돌아요. 형제가 없는 친구한테 "너 동생 그만 괴롭혔어?"라고 물으면, 예도 아니오도 답할 수 없는 것과 똑같아요.
여기서 스트로슨의 진짜 한 방은 이거예요. 말 자체가 무언가를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사람이 그 말을 써서 가리키는 거죠. 똑같은 "프랑스 왕"이라는 표현도 루이 14세가 살아 있던 시절에 쓰면 진짜 누군가를 가리키지만, 지금 쓰면 아무도 가리키지 못해요. 그러니 가리키는 일은 단어가 혼자 부리는 힘이 아니라, 그 말을 꺼내 쓰는 사람과 상황의 몫인 거예요.

스트로슨은 세상을 새로 폭로하거나 뜯어고치려 하지 않았어요. 대신 우리가 이미 쓰고 있는 생각의 틀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했고, 그걸 기술적 형이상학이라고 불렀어요. 그 틀의 바닥에는 하나하나 집어낼 수 있는 개체, 그중에서도 물체와 사람이 놓여 있었어요. 사람은 몸과 마음으로 쪼개지지 않는 하나의 단위였고요. 또 그는 말이 스스로 무언가를 가리킨다는 생각을 뒤집어, 가리키는 일은 결국 말을 쓰는 사람의 몫이라는 걸 보여 줬어요. 어려운 이론을 새로 쌓아 올리기보다, 우리가 늘 하던 생각과 말투를 천천히 들여다본 철학자로 기억하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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