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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우리는 보통 도덕을 행동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길에서 넘어진 사람을 도울지 말지, 거짓말을 할지 말지, 그 갈림길에서 옳은 쪽을 고르는 일이라고요. 그래서 도덕 하면 결심하는 장면, 의지를 꽉 쥐는 장면이 떠오르죠.
그런데 한 철학자는 이렇게 물었어요. 정말 중요한 일은 그 갈림길에 서기 한참 전에 이미 끝나 있는 게 아닐까요?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었느냐가 도울지 말지를 거의 정해 버리니까요. 그 사람이 바로 아이리스 머독입니다.

아이리스 머독은 1919년부터 1999년까지 살았던 영국의 철학자예요. 옥스퍼드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동시에 평생 스물여섯 권의 소설을 쓴 작가이기도 했죠. 한쪽 손으로는 까다로운 도덕철학 논문을 쓰고, 다른 손으로는 사람들의 질투와 사랑과 자기기만을 그린 이야기를 쓴 셈이에요.
그래서인지 머독의 도덕 이야기에는 딱딱한 규칙보다 사람을 들여다보는 눈이 늘 먼저 나와요. 그 핵심 생각을 한마디로 줄이면 이거예요. 도덕은 무엇을 하느냐이기 이전에, 무엇을 어떻게 보느냐다.

머독이 직접 든 유명한 예가 있어요. 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요. 속으로 이렇게 봐요. 저 애는 너무 천박하고, 버릇없고, 품위가 없어. 겉으로는 아무 내색 안 하고 친절하게 대하지만, 마음속 그림은 그렇게 굳어 있죠.
그러다 시어머니가 스스로에게 물어요. 내가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내 질투나 답답함이 끼어든 건 아닐까. 그리고 며느리를 다시, 천천히 봐요. 그러자 천박해 보이던 모습이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버릇없어 보이던 모습이 젊은이다운 생기로 다르게 보이기 시작해요.
여기서 신기한 점이 있어요. 며느리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멀리 이사를 갔을 수도, 이미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죠. 바깥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도덕적으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어요. 시어머니의 마음속 시선이 더 정확하고 더 다정해진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더 잘 볼 수 있을까요. 머독은 가장 큰 방해물이 바로 나 자신이라고 봤어요. 우리 눈앞에는 늘 두툼한 자기라는 안개가 끼어 있거든요. 내 불안, 내 욕심,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그 안개 때문에 우리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못 보고, 나한테 편한 모습으로 멋대로 칠해서 봐요.
그래서 머독은 잘 보기 위해 나를 잠깐 비워야 한다고 말해요.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노을이 너무 예뻐서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잠깐 내 걱정을 잊잖아요. 좋은 그림이나 새 한 마리에 마음을 뺏기는 순간도 그래요. 그 짧은 사이에 나라는 안개가 옅어지고, 세상이 또렷하게 보여요. 머독은 이런 다정하고 정확한 바라봄을 주의라고 불렀어요. 친구였던 철학자 시몬 베유에게서 빌려 온 말이죠.

머독에게 이 모든 바라봄이 향하는 곳에는 선이 있어요. 선은 손에 쥘 수 있는 규칙이 아니라, 하늘의 해처럼 멀리서 우리를 비추고 끌어당기는 무언가예요. 우리는 그 빛에 닿을 수는 없지만, 그쪽을 향해 조금씩 더 정확하게 보려고 애쓸 수는 있죠.
이게 왜 중요할까요. 도덕을 결심의 문제로만 보면, 평소에는 도덕과 상관없이 살다가 갈림길에서만 잠깐 착해지면 되는 셈이에요. 하지만 머독 말이 맞다면, 도덕은 쉬는 법이 없어요. 누군가를 떠올리고 판단하는 모든 순간, 우리는 이미 더 잘 보거나 더 멋대로 보거나 둘 중 하나를 하고 있으니까요.

아이리스 머독은 도덕을 행동의 갈림길이 아니라 바라봄의 문제로 옮겨 놓았어요. 며느리를 다시 본 시어머니처럼, 바깥은 그대로여도 내 시선이 더 정확하고 다정해지는 것 자체가 도덕적인 일이라고요. 그 길을 막는 건 늘 나라는 안개고, 노을이나 좋은 작품 앞에서 나를 잠깐 비울 때 우리는 조금 더 잘 보게 돼요. 그래서 다음에 누군가가 밉게 느껴질 때, 한 번 더 천천히 보는 일은 그저 착한 마음이 아니라 머독이 말한 도덕의 시작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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