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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음악 앱을 켜고 따끈한 신곡을 틀었는데, 어딘가 예전에 들어 본 것 같은 기분이 든 적 있나요? 분명 올해 나온 노래인데 10년 전, 20년 전 분위기를 그대로 입은 듯한 느낌요. 옷도 그렇고 영화도 그래요. '레트로'라는 이름을 붙여 옛날 것을 다시 꺼내 입고, 옛날 영화를 다시 만들고요.
이 묘한 기분을 평생 붙잡고 늘어진 사람이 있어요. 영국의 비평가 마크 피셔예요. 그는 이걸 그냥 '요즘 유행'으로 넘기지 않고, 우리 시대 전체가 무언가에 홀려 있다고 봤어요.

마크 피셔는 1968년에 태어나 2017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 사람이에요. 마흔여덟 살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죠. 대학에 자리를 잡기 전부터 '케이펑크'라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이름을 알렸고, 음악과 영화 같은 우리 주변의 문화를 가지고 묵직한 생각을 풀어내는 데 재주가 있었어요.
그가 2014년에 낸 책이 바로 '내 삶의 유령들'이에요. 제목에 유령이 들어가지만 무서운 귀신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가 말하는 유령은, 분명히 여기 없는데도 자꾸 느껴지는 어떤 것이거든요.

유령의 정체를 알려면 작은 장면 하나를 떠올려 봐요. 이사 간 빈집에 들어섰는데, 벽에 액자를 걸었던 자국이 네모나게 남아 있어요. 액자는 없어요. 그런데 그 자국 때문에 '여기 뭔가 걸려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죠. 없는데도 흔적으로 존재하는 거예요.
피셔는 이런 상태를 가리키려고 '하운톨로지'라는 어려운 말을 빌려 와요. '홀린다'는 뜻의 단어와 '존재를 따지는 학문'이라는 단어를 합친 말장난인데,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먼저 쓴 표현이에요. 쉽게 말하면, 지금 눈앞엔 없지만 그 빈자리가 계속 느껴지는 상태예요.

그럼 우리 시대를 홀리고 있는 유령은 누구일까요. 피셔의 답은 '오지 않은 미래'예요.
어릴 때 상상하던 미래를 떠올려 봐요. 하늘을 나는 자동차, 누구나 일을 덜 하고도 잘 사는 세상, 해마다 깜짝 놀랄 만큼 새로운 음악. 20세기 사람들은 이런 미래가 곧 온다고 진심으로 믿었어요.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미래는 새 얼굴로 오지 않고 옛날 것을 재탕하고만 있어요. 약속됐지만 끝내 도착하지 않은 그 미래가, 벽에 남은 액자 자국처럼 우리를 따라다니는 유령이에요.

피셔는 이 답답함을 다른 책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정리했어요. '지금 이 방식 말고 다른 길은 상상조차 못 하겠다'는 분위기예요.
마치 식당에 메뉴판이 딱 하나뿐이라, 다른 음식은 아예 떠올리지도 못하는 상태와 비슷해요. 새로운 세상을 그리는 힘이 약해지니, 문화도 새것을 만드는 대신 안전하게 옛날 것을 다시 꺼내요. 그래서 신곡이 자꾸 옛날처럼 들리는 거예요. 미래를 그릴 자리에 추억이 들어와 앉은 거죠.

이 책에는 또 하나의 무거운 주제가 흐르는데, 바로 우울이에요. 피셔 자신이 오래 우울과 싸웠고, 그걸 단순히 개인의 약함으로만 보지 않았어요.
더 나은 내일을 도무지 그릴 수 없을 때, 사람 마음에도 똑같이 그늘이 내려요. 모두 '원래 세상은 이런 거야' 하고 체념할 때 느끼는 그 무기력함을, 피셔는 시대가 함께 앓는 병처럼 다뤘어요. 그래서 음악 이야기로 시작한 책이 마음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마크 피셔의 '내 삶의 유령들'은, 새 노래가 자꾸 옛날 같다는 작은 느낌에서 출발해요. 그는 우리 시대가 '오지 않은 미래'라는 유령에 홀려 있다고 봤어요.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힘이 줄어든 탓에, 문화는 새것 대신 옛것을 재탕하고, 사람 마음에도 그늘이 진다는 거예요. 다음에 어떤 노래나 영화가 '어디서 본 것 같다' 싶을 때, 그게 단지 취향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잃어버린 미래의 흔적일 수도 있다는 것, 그 한 조각만 기억해도 이 책을 만난 보람은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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