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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음악 앱에서 올해 나온 신곡을 트는데, 이상하게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죠. 멜로디도, 가수 옷차림도, 영화 포스터 분위기도 10년 전이나 20년 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한번 사진으로 비교해 볼까요. 1980년대 거리 사진과 1990년대 거리 사진을 나란히 두면 옷, 머리 모양, 자동차가 확 달라서 한눈에 시대가 구분돼요. 그런데 2010년 사진과 지금 사진은요? 스마트폰만 조금 얇아졌을 뿐, 어느 쪽이 더 최근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극장에는 옛날 영화의 속편이나 다시 만든 작품이 줄줄이 걸리고, 유행은 자꾸 복고로 돌아가요. 영국의 한 비평가가 바로 이 느낌을 평생의 질문으로 붙들었어요.

그 비평가의 이름은 마크 피셔예요. 1968년에 태어나 2017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 사람이고,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케이펑크'라는 블로그에 글을 올리며 이름을 알렸어요. 그는 두꺼운 철학책 속에만 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듣는 음악과 보는 영화, 출근길의 답답한 기분,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모양까지 한 자리에 놓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글이 어렵게 시작해도 결국 '아, 내 이야기네' 싶게 만들어요. 그가 던진 가장 유명한 질문이 바로 '문화는 왜 멈췄나'였어요.

피셔는 이상한 표현을 하나 즐겨 썼어요. '미래가 천천히 취소되고 있다.' 무슨 뜻일까요. 예전 사람들은 다음 세대의 음악이나 영화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거라 기대했어요. 1960년대 사람에게 1980년대 음악을 들려주면 '이게 미래구나' 하고 놀랐을 거예요. 그만큼 10년, 20년 사이에 소리도 모양도 확 바뀌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 기대가 잘 안 생겨요. 새 앨범이 나와도 옛 감성을 다시 꺼내 다듬은 느낌이고, 새 영화도 우리가 어릴 때 보던 이야기의 다음 편인 경우가 많아요. 피셔는 이걸 '문화가 과거를 계속 재활용하느라 새로운 미래를 못 그리는 상태'라고 봤어요. 멈춰 선 게 아니라,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거죠.

왜 이렇게 됐을까요. 피셔의 대답이 담긴 책이 2009년에 나온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에요. 제목은 딱딱하지만 뜻은 단순해요. 우리가 사는 방식, 그러니까 거의 모든 걸 돈과 경쟁으로 풀어 가는 이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진 상태를 가리켜요.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한 가지 게임만 해 와서, 규칙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안 드는 것과 비슷해요. 피셔는 이런 말을 빌려 와요. '세상의 끝을 상상하기는 쉬워도, 지금 이 체제의 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영화 속 지구 멸망이나 좀비 떼는 그렇게 실감 나게 그리면서, 정작 우리 삶의 규칙이 다르게 짜이는 모습은 좀처럼 못 그린다는 거예요. 다른 미래를 못 그리니, 문화도 새 미래 대신 옛 추억만 맴돈다는 게 그가 이은 연결고리예요.

피셔가 특별했던 건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그는 많은 사람이 겪는 우울과 불안을 그저 개인의 약함이나 마음의 병으로만 보지 않았어요. 끝없이 경쟁하게 하고, 잘 안 되면 전부 '네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돌려보내는 사회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지치게 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네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런 구조 안에 있으면 누구나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어요. 문화가 멈춘 답답함과 마음이 가라앉는 우울을, 그는 서로 멀리 떨어진 일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자란 일로 본 거예요. 피셔 자신도 오랫동안 우울을 앓았고, 2017년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어요. 그래서 그의 글은 머리로만 쓴 이론이 아니라, 직접 겪은 사람의 목소리로 읽혀요.

피셔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는 건, 답답함의 원인을 나 한 사람 바깥에서도 찾아보게 해 주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왜 새로운 게 없지', '나는 왜 자꾸 무기력하지' 같은 기분을 오롯이 혼자만의 문제로 두지 않고, 우리가 사는 방식과 이어서 바라보는 눈을 줘요. 물론 피셔가 '그럼 어떻게 바꾸나'에 깔끔한 답을 다 내놓은 건 아니에요. 그는 답을 파는 사람이라기보다, 흐릿하던 질문을 또렷하게 다듬은 사람에 가까워요. 다음에 새 노래가 옛날 같다고 느낄 때, 그게 그저 내 취향이 늙은 탓인지 시대의 공기 탓인지 한 번쯤 곱씹어 보게 되는 것, 거기서부터가 그의 몫이에요.

마크 피셔는 '문화는 왜 멈췄나'라는 질문으로, 새것이 자꾸 옛것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설명하려 한 영국의 이론가예요. 그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진 상태를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부르고, 문화가 멈춘 듯한 느낌과 사람들의 우울을 같은 뿌리에서 봤어요. 그의 글은 시원한 답을 건네기보다, 내 답답함을 나 혼자의 문제로만 두지 않고 시대와 함께 바라보게 하는 질문에 가까워요. 다음에 '요즘은 새로운 게 없네' 싶은 순간이 오면,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한 번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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