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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시험을 망치고 집에 온 날을 떠올려 볼게요. 보통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게을러서 그래. 내가 약해서 그래." 마음이 자꾸 가라앉을 때도 비슷해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들지. 다들 잘 사는데 나만 이상한가 봐." 이렇게 모든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죠.
그런데 여기에 "잠깐, 정말 그게 다 네 탓일까?" 하고 끼어든 사람이 있어요. 영국의 사상가 마크 피셔예요. 1968년에 태어나 2017년에 마흔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사람인데, 그는 평생 한 가지 질문을 붙들고 있었어요. 우리가 개인의 문제라고 믿는 우울이, 사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양과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질문이었죠.

피셔의 생각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만든 말 하나를 알아야 해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에요. 어려워 보이지만 장면은 단순해요.
물속에서 평생 헤엄친 물고기에게 물어보세요. "물이 뭐야?" 물고기는 어리둥절할 거예요. 너무 당연해서 그게 있다는 것조차 못 느끼니까요. 피셔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꼭 그런 물 같다고 봤어요. 모든 걸 돈으로 사고팔고, 끝없이 경쟁하고, 더 빨리 더 많이 해내야 하는 이 방식 말이에요.
우리는 이게 너무 익숙해서, 마치 공기나 물처럼 원래부터 있던 자연 같다고 느껴요. 피셔는 이런 말로 그 느낌을 콕 집었어요. "세상이 끝나는 건 상상할 수 있어도, 지금 이 방식이 끝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다른 삶의 방식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을 만큼, 이 물이 우리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럼 이 물속에서 우울은 어떻게 다뤄질까요? 피셔가 본 풍경은 이래요.
누군가 너무 지쳐서 무너지면, 세상은 이렇게 말해요. "그건 네 머릿속 화학물질 문제야. 상담받고 약 먹고, 얼른 회복해서 다시 일하러 가." 물론 약과 상담이 필요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피셔가 이상하게 여긴 건, 이 모든 설명이 오직 '너 한 사람'에게서만 원인을 찾는다는 점이었어요.
그는 이걸 '스트레스의 사유화'라고 불렀어요. 사유화는 함께 쓰던 걸 개인 몫으로 쪼개 나눠 갖는다는 뜻이에요. 원래는 같이 떠안아야 할 짐을, 한 사람 한 사람 방으로 흩어 놓고 "이건 네 개인 사정"이라고 도장을 찍는 거죠. 그러면 너무 많은 일, 불안한 미래, 끝없는 경쟁 같은 진짜 무게는 보이지 않게 돼요. 남는 건 "내가 부족해서"라는 자책뿐이고요.

바로 여기서 피셔의 핵심 문장이 나와요. "우울은 정치적이다."
오해하기 쉬운데, 이건 "우울한 사람은 정당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 전혀 아니에요. 한 반에서 절반이 배가 아프다면, 우리는 한 명 한 명에게 "네 위장이 약해서"라고 말하기 전에 급식을 의심하잖아요. 피셔가 하려던 말이 딱 이거예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지치고 우울하다면, 그건 각자의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사는 방식 어딘가에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 '정치적'이라는 말은 '함께의 문제'라는 뜻에 가까워요. 혼자 방에서 자책할 일을, 밖으로 꺼내 같이 들여다보자는 초대예요. 피셔 자신도 오래 우울을 앓았기에, 이건 책상에서 만든 이론이 아니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였어요.

이 생각이 왜 중요할까요? 무엇이 달라지는지가 분명하기 때문이에요.
우울을 순전히 내 탓으로만 보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자기를 더 다그치는 일밖에 없어요. "더 노력해, 더 버텨." 하지만 그 무게의 일부가 세상의 모양에서 온다는 걸 알면, 시선이 바뀌어요. 무조건 나를 고치려 들기 전에, "이 구조가 너무 사람을 몰아붙이는 건 아닐까" 하고 물을 수 있게 되죠.
이건 책임을 회피하자는 게 아니에요. 엉뚱한 곳에 도장 찍힌 죄책감을 떼어 내고, 문제를 제자리에서 보자는 거예요. 그래야 혼자 끙끙 앓는 대신 함께 바꿀 길도 찾을 수 있으니까요.

마크 피셔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생각, 즉 "내가 힘든 건 다 내 탓"이라는 믿음을 살짝 비틀어 본 사람이에요. 그는 우리가 물고기처럼 잊고 사는 세상의 모양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이름 붙이고, 그 속에서 우울이 어떻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골방으로 떠밀려 '네 개인 사정'이 되는지를 보여 줬어요. "우울은 정치적이다"라는 그의 말은, 혼자 삼키던 아픔을 밖으로 꺼내 함께의 문제로 보자는 초대였고요. 다음에 마음이 가라앉아 자신을 탓하고 싶어질 때, 잠깐 이 질문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이게 정말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아니면 우리가 함께 헤엄치는 이 물의 문제이기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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