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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가끔 이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어떤 멜로디가 종일 머릿속을 맴도는데, 막상 무슨 곡인지 떠올리려 하면 잡히지 않아요. 분명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디에도 없는 노래죠. 있지도 않은데 곁에 있는 듯한 이 묘한 느낌, 이게 오늘 이야기할 한 사람의 출발점이에요. 영국의 문화 이론가 마크 피셔는 우리 시대 전체가 바로 이런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고 봤어요.

'유령론'이라는 말부터 풀어 볼게요. 한자로는 유령을 다루는 이론이라는 뜻인데, 진짜 귀신 이야기가 아니에요. 빈집에 들어갔을 때 떠난 사람의 흔적이 아직 공기 중에 남아 있는 듯한 기분, 그 느낌을 떠올려 보세요. 분명 지금 여기 없는데도 무언가가 계속 곁을 맴돌며 영향을 주는 상태. 이걸 학문의 언어로 옮긴 게 유령론이에요.
원래 이 말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1993년에 쓴 표현인데, 마크 피셔가 이걸 음악과 영화 같은 우리 일상의 문화로 끌고 왔어요. 그가 주목한 유령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오지 않은 미래였습니다.

잠깐 이 사람을 소개할게요. 마크 피셔는 1968년에 태어나 2017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 사람이에요. 마흔여덟 해를 살았죠. 처음에는 케이펑크라는 이름의 개인 블로그에 글을 쓰던 평범한 글쟁이였는데, 그 글들이 입소문을 타면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이론가가 됐어요.
그가 다룬 주제는 셋이 늘 한 덩어리로 붙어 다녀요. 문화, 우울, 그리고 정치예요. 보통은 따로 떼어 생각하는 것들인데, 피셔는 내 마음이 가라앉는 일과 우리가 보는 영화나 듣는 음악,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 구조가 사실 한 줄로 이어져 있다고 봤어요.

피셔가 던진 가장 유명한 질문은 이거예요. 왜 요즘 문화는 자꾸 옛날 것을 다시 꺼내 쓸까. 20세기 사람들은 미래가 지금과 완전히 다를 거라 믿었어요. 우주를 날아다니고,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새로운 소리가 나오고, 세상이 통째로 바뀔 거라고요.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어때요. 영화는 옛날 작품의 속편이나 리메이크가 가득하고, 음악은 몇십 년 전 유행을 다시 입혀 내놓아요. 새로운 미래 대신 과거를 계속 복사해 붙이고 있는 거죠. 피셔는 이걸 두고 미래가 천천히 취소돼 버렸다고 표현했어요. 분명 약속받았는데 끝내 오지 않은 미래, 그 오지 않은 미래가 유령처럼 우리 곁을 떠도는 거예요. 여행 가려고 돈을 모았는데 자꾸 미뤄지다 결국 가려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과 비슷해요.

그럼 왜 미래를 상상하는 힘이 사라졌을까요. 피셔는 우리가 '다른 길은 없다'는 생각에 갇혔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그는 이 상태를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불렀어요. 지금의 세상 말고 다른 세상은 아예 떠올릴 수조차 없게 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물속 물고기가 물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듯, 우리는 지금의 경쟁과 소비 말고 다른 삶을 그리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거죠. 세상이 끝나는 장면은 영화로 쉽게 떠올리면서, 정작 지금 사는 방식이 바뀌는 건 상상하기 더 어려운 시대가 됐어요.
여기서 피셔의 세 주제가 만나요. 그는 우울도 단지 개인이 약해서 생긴 마음의 병으로만 보지 않았어요. 다른 미래가 안 보이는 사회에 갇혀 지칠 때, 그 무력감이 한 사람의 마음에 우울로 내려앉을 수 있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내 기분과 사회 구조를 따로 떼지 않았죠.

마크 피셔의 유령론은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 약속받았지만 끝내 오지 않은 미래가 유령처럼 지금 우리 곁을 맴돈다는 이야기예요. 그는 문화가 자꾸 과거를 되감는 이유를 다른 길을 상상하는 힘이 약해진 데서 찾았고, 그 답답함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불렀어요. 그리고 그 무력감이 우리 마음의 우울과도 이어져 있다고 봤죠. 다음에 익숙한 옛 노래나 리메이크 영화를 만났을 때, 우리가 정말 그리워하는 건 그 시절이 아니라 그때 꿈꾸던 오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해 두면 충분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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