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3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학 시험은 답이 딱 하나예요. 2 더하기 3은 5, 누가 풀어도 똑같죠. 그런데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 같은 질문도 이렇게 공식 하나로 풀 수 있을까요?
옛날 철학자들 중에는 "그렇다"고 믿은 사람이 많았어요. 어떤 사람은 "모두의 행복을 가장 크게 만드는 쪽을 고르면 돼"라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누구에게나 통하는 규칙을 지키면 돼"라고 했죠. 마치 착한 일에도 계산기가 있는 것처럼요.
영국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는 여기서 고개를 갸웃했어요. 1929년에 태어나 2003년까지 74년을 산 사람인데, 그는 평생 "그 계산기, 정말 믿어도 될까?" 하고 물었어요.

윌리엄스가 든 이야기 하나를 볼게요. 화학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무기 만드는 일을 정말 싫어해요. 그런데 누가 이렇게 말해요. "네가 이 무기 연구소에 안 들어가면, 더 신나서 무기를 만들 사람이 대신 들어갈 거야. 그러니 네가 들어가는 게 모두에게 나아."
행복 계산기로 따지면 답은 "들어가라"예요. 전체 피해가 줄어드니까요. 그런데 윌리엄스는 물어요. 그럼 이 사람이 평생 지켜 온 "나는 무기를 안 만들어"라는 마음은요? 계산기는 그 마음을 그냥 숫자 0으로 지워 버려요.
윌리엄스는 이걸 진실성 문제라고 봤어요. 사람에게는 자기를 자기답게 만드는 약속과 신념이 있는데, 공식은 그걸 "그냥 숫자 하나"로 취급해 버린다는 거예요. 너무 추상적이어서, 정작 살아 있는 사람이 쏙 빠진다는 거죠.

또 하나 유명한 장면이 있어요. 물에 빠진 두 사람이 있는데, 한 명은 내 가족이고 한 명은 모르는 사람이에요. 둘 다 구할 수는 없어요. 당신은 누구를 구할까요?
대부분 가족을 구하겠죠. 그런데 만약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 봐요. "가족을 먼저 구해도 괜찮은 상황이고, 규칙상 허락되니까 가족을 구하자."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윌리엄스는 이걸 "생각이 한 번 더 많다"고 표현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는 데 "규칙상 괜찮으니까"라는 한 단계가 끼어드는 순간,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니라 계산이 되어 버려요. 도덕 공식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보통 "내가 어쩔 수 없는 일로는 혼나면 안 돼"라고 생각해요. 운은 도덕과 상관없다고 믿죠. 그런데 윌리엄스는 여기에도 의문을 던졌어요. 이걸 도덕적 행운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생각해 봐요. 운전자 두 명이 똑같이 잠깐 한눈을 팔았어요. 한 명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다른 한 명은 마침 길을 건너던 아이를 치고 말았어요. 한눈판 정도는 똑같은데, 두 사람의 마음과 남들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져요. 그 차이를 만든 건 실력이나 양심이 아니라, 그저 그 순간 길에 아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운이었어요.
윌리엄스는 이런 운이 우리 삶 곳곳에 박혀 있다고 봤어요. 큰 결심을 할 때도, 그게 옳았는지는 한참 뒤 결과를 봐야 알 때가 많죠. 그러니 "내 의지로 통제한 것만 도덕이다"라는 깔끔한 그림은 현실과 잘 안 맞는다는 거예요.

버나드 윌리엄스는 착한 일에도 만능 계산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의심한 철학자예요. 공식은 사람의 진실성을 숫자로 지워 버리고, 사랑에 굳이 이유를 갖다 대게 만들고,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운까지 못 본 척한다고 봤죠. 그가 남긴 건 더 멋진 새 공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은 깔끔한 공식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솔직함이에요. 도덕을 더 어렵게 만든 게 아니라, 더 사람답게 되돌려 놓으려 한 셈이에요.
3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