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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예요. 차도 사람도 없는데 빨간불이 켜져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멈칫하죠. 왜 그럴까요? 경찰이 무서워서요? 그런데 경찰이 안 보여도 우리는 멈춰요. 마음속에 이미 "빨간불엔 서야 해"라는 생각이 들어와 있거든요. 누가 옆에서 시키지 않았는데도요.
한 프랑스 철학자는 바로 이 장면을 평생 파고들었어요. 누가 억지로 누르지 않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규칙을 따르게 되는 이 신기한 일이요. 그 사람이 오늘 이야기할 루이 알튀세르예요.

루이 알튀세르는 1918년에 태어나 1990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예요. 파리의 이름난 학교 에콜 노르말에서 30년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는 마르크스라는 옛 사상가의 생각을 새로 읽어 내려 했어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방향이 좀 달랐어요. 한 사람의 마음이나 의지보다, 그 사람을 둘러싼 사회의 '틀'이 먼저라고 본 거예요. 이 틀을 어려운 말로 '구조'라고 해요. 그래서 그의 생각을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러요. 말은 딱딱하지만, 뜻은 곧 쉽게 풀어 볼게요.

알튀세르는 사회가 사람들을 한 줄로 세우는 방법을 두 가지로 나눴어요.
하나는 경찰, 군대, 감옥처럼 힘으로 누르는 거예요. 말을 안 들으면 잡아가니까요. 눈에 확 보이는 방법이죠. 그는 이걸 억압적 국가장치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알튀세르가 더 중요하다고 본 건 두 번째예요. 학교, 가족, 종교, 방송 같은 것들이요. 여기엔 무기도 수갑도 없어요. 대신 우리에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매일 조금씩 알려 줘요. 알튀세르는 이걸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고 불렀어요. 총 대신 생각으로 사람을 길들이는 장치라는 뜻이에요. 학교에서 줄 서는 법, 시간 지키는 법, 어른 말 듣는 법을 배우는 동안,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회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라난다는 거죠.

여기서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나오죠. 어렵게 들리지만, 공기를 떠올리면 쉬워요. 우리는 공기 속에서 살지만 평소엔 공기가 있는 줄도 몰라요. 그냥 당연하니까요.
이데올로기도 그래요. "남자는 이래야지", "공부 잘하면 성공해", "이게 정상이야" 같은 생각들이요. 누가 언제 정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단순한 거짓말이라기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안경 같은 거라고 했어요. 색 있는 안경을 쓰면 세상이 그 색으로 보이는데, 정작 자기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건 잊어버리잖아요. 그게 이데올로기의 힘이에요.

알튀세르의 생각 중 가장 유명한 장면이 있어요. 길을 걷는데 뒤에서 누가 "어이, 거기!" 하고 불러요. 그러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죠. 그 순간 '아, 나를 부르는구나' 하면서, 나는 '불린 사람'이 돼요.
알튀세르는 사회도 이렇게 우리를 부른다고 했어요. 이걸 호명이라고 해요. 이름을 부른다는 뜻이에요. 학교가 "학생!" 하고 부르면 우리는 학생이 되고, 나라가 "국민!" 하고 부르면 국민이 돼요. 부름에 돌아보는 그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 딱 맞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스스로 골랐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미리 마련된 자리로 불려 간 거죠.

보통 우리는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다"고 믿어요. 알튀세르는 여기에 살짝 물음표를 달았어요. 생각해 보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학교도 법도 말도 직업도 다 있었잖아요. 마치 게임이 한참 진행된 뒤에 늦게 들어온 사람처럼, 규칙은 이미 짜여 있어요.
그래서 그는 사람보다 구조가 먼저라고 본 거예요. 한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전에, 그 사람을 둘러싼 틀부터 봐야 한다는 거죠. 이게 그의 생각을 구조주의라 부르는 이유예요. 물론 "그럼 사람은 아무것도 못 바꾸는 거냐"는 반론도 많았어요. 그 논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요.

알튀세르는 사회가 우리를 붙드는 두 가지 방법을 보여 줬어요. 힘으로 누르는 장치와, 생각으로 길들이는 장치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들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는 이데올로기일 수 있고, 우리는 누군가의 부름에 돌아보며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돼요. 다음에 "이건 원래 당연한 거야"라는 말이 들릴 때, 한 번쯤 '누가 나를 이렇게 부른 걸까' 하고 돌아보는 것. 그게 바로 알튀세르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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