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900년쯤 전, 지금의 독일 땅에 한 수녀가 살았어요. 이름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이에요. 이름이 길고 낯설죠? 그냥 '힐데가르트'라고 부를게요.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눈앞에 환한 빛 같은 것이 떠오르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어요. 잠을 잘 때 꾸는 꿈이 아니라, 눈을 뜨고 멀쩡히 깨어 있는데도 보이는 장면이었대요. 이런 걸 어려운 말로 '환시'라고 해요. 머릿속에 영화 한 편이 켜지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무섭다고 숨겼을 텐데, 힐데가르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글로 적기 시작했어요. 그게 그냥 신기한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설명하는 큰 책이 됐어요.

힐데가르트는 1098년에 태어나 1179년까지, 그러니까 여든 살 넘게 살았어요. 그 시절 사람치고는 아주 오래 산 거예요. 열 번째 아이로 태어나 어릴 때 수도원에 맡겨졌고, 평생을 그 안에서 살았어요.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게 있어요. 그때는 여자가 글을 쓰고 자기 생각을 밖으로 내놓는 일이 거의 없던 시대였어요. 학교 교실로 치면, 발표는 남학생만 하던 교실 같은 거예요. 그런데 힐데가르트는 책을 여러 권 쓰고, 노래를 일흔 곡 넘게 만들고, 교황과 황제에게 편지까지 보냈어요. 예순이 넘은 나이에는 직접 여러 도시를 돌며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도 했고요. 수도원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 살았지만, 생각만은 우물 밖으로 멀리 뻗은 사람이었어요.

힐데가르트의 환시는 '천국이 예쁘더라' 같은 감상이 아니었어요. 그 안에는 늘 설명이 따라붙었어요. 하늘과 땅, 별과 사람의 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림처럼 보여 주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이래요. 우리는 보통 신을 믿는 마음,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로따로 생각하잖아요. 힐데가르트는 이 셋을 한 장의 지도 위에 겹쳐 놓았어요. 별이 도는 하늘이 곧 신의 솜씨이고, 그 질서를 닮아 사람도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식이에요. 환시라는 그림을 펼쳐 놓고, '봐요, 다 이어져 있죠?' 하고 설명하는 선생님 같았어요.

힐데가르트가 특히 좋아한 말이 있어요. 라틴어로 '비리디타스', 우리말로 옮기면 '푸름' 또는 '푸른 생명력'이에요.
봄에 마른 나뭇가지에서 연두색 새싹이 톡 터지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그 싱그러운 기운이 비리디타스예요. 힐데가르트는 이 푸른 기운이 풀과 나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 나아가 온 우주에 흐른다고 봤어요. 건강한 사람은 이 기운이 잘 도는 사람이고, 아픈 사람은 그게 메마른 사람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그는 약초와 돌, 동물을 관찰해 병을 다루는 책도 썼어요. 환한 환시를 보는 사람이, 동시에 들판의 풀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던 거죠. 하늘 이야기와 땅의 풀 이야기가 그에게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어요.

힐데가르트가 대단한 건, 보이지 않는 믿음과 눈에 보이는 자연을 따로 떼어 놓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신학도, 우주 이야기도,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도 전부 '세상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한 가지 생각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단순히 환시를 본 수녀가 아니라, 자기 시대를 통째로 설명하려 한 사상가로 봐요. 여자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던 시대에, 자기 눈으로 본 것을 끝까지 글로 남긴 사람이고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은 900년쯤 전 독일에서 살며, 어릴 때부터 본 환시를 마흔 넘어 글로 옮긴 수녀예요. 그는 신에 대한 믿음과 별이 도는 우주, 사람이 살아갈 길을 따로 보지 않고 한 장의 지도처럼 겹쳐 설명했어요. 봄 새싹 같은 '푸른 생명력'이 풀에도 사람에도 우주에도 흐른다고 본 거죠. 그래서 그를 기억할 때는 '신비한 환시를 본 사람'보다, 세상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자기 눈으로 끝까지 설명하려 한 중세의 여성 사상가로 떠올리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4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