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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공상과학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와요. 사람이 기계에 들어가면 몸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캔되고, 저 멀리 화성에서 똑같은 몸이 다시 만들어져요. 그 순간 지구에 있던 원래 몸은 사라지고요. 화성에 나타난 사람은 내 기억, 내 성격, 내 말버릇을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있어요.
자, 그 사람은 진짜 '나'일까요? 아니면 나랑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이 새로 태어난 걸까요? 그냥 말장난 같지만, 이 질문을 무려 30년 넘게 붙잡고 늘어진 철학자가 있어요. 영국의 데릭 파핏이에요.

데릭 파핏은 1942년부터 2017년까지 살았던 영국 철학자예요. 옥스퍼드 대학의 한 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는데, 거기서는 학생을 가르칠 의무가 없어서 그냥 평생 생각만 할 수 있었어요. 실제로 그렇게 살았고요.
그는 시간을 아끼려고 늘 같은 옷을 입고, 끼니도 단순하게 때웠대요. 취미라곤 사진 찍기 하나였는데, 그것도 베네치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오래된 건물 창문만 수없이 찍었다고 해요. 한 가지 질문에 모든 걸 쏟아붓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 질문이 바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였어요.

다시 순간이동 기계로 돌아가 볼게요. 보통 우리는 '저게 진짜 나냐 아니냐'를 두고 답이 딱 하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파핏은 여기서 생각을 살짝 비틀어요.
기계가 고장 나서 원래 몸이 안 사라지고, 화성에도 똑같은 사람이 만들어졌다고 해봐요. 이제 똑같은 사람이 둘이에요. 둘 다 '내가 진짜 나'라고 우길 텐데, 둘 다 나일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어느 한쪽만 진짜라고 할 근거도 없고요.
파핏은 여기서 이렇게 말해요. 사실 '저게 나냐'라는 질문 자체가 잘못 끼워진 단추라고요. 정말 중요한 건 '내가 그 사람과 동일인이냐'가 아니라, 내 기억과 성격이 끊기지 않고 그 사람에게로 이어졌느냐예요. 강물 같은 거예요. 어제의 강물과 오늘의 강물이 똑같은 물은 아니지만, 끊김 없이 흘러 이어졌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매 순간 조금씩 바뀌며 이어지는 흐름이라는 거죠.
이 생각엔 위로가 담겨 있어요. 파핏은 이 결론에 이르자 죽음이 덜 무서워졌다고 고백했어요. '나'라는 단단한 알맹이가 통째로 사라진다고 보면 두렵지만, 원래부터 이어지는 흐름일 뿐이라면 그 흐름이 멈추는 일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진다는 거예요.

파핏은 한 발 더 나아가요. 이번엔 100년, 200년 뒤에 태어날 사람들 차례예요. 여기서 머리 아픈 수수께끼가 하나 튀어나와요.
우리가 지금 환경을 함부로 쓰는 정책을 골랐다고 해봐요. 그럼 먼 미래 사람들이 망가진 지구에서 고생하겠죠. 그런데 묘한 점이 있어요. 우리가 다른 정책을 골랐다면, 사람들의 삶과 만남이 전부 달라져서 '그 미래의 그 사람들'은 아예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태어났겠죠.
그러니 미래 사람이 우리한테 '왜 지구를 망쳤냐'고 따지면, '네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 선택인데?'라고 답할 수 있게 돼요. 그 선택이 없었으면 너는 없었으니까요. 그럼 우리는 그들에게 잘못한 게 없는 걸까요?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은데 딱 짚어 말하기가 어려워요. 파핏은 이 까다로운 매듭을 정면으로 끄집어내 보여줬어요.

또 하나, 파핏을 오래 괴롭힌 문제가 있어요. 사람 수가 많아질 때 어떤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냐는 거예요.
행복을 그냥 다 더해서 큰 쪽이 좋은 세상이라고 쳐봐요. 그럼 아주 행복한 사람 100억 명이 사는 세상보다, 겨우 살 만한 정도의 삶을 가진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세상이 '총합이 더 크다'는 이유로 더 좋은 세상이 돼버려요. 파핏은 이 결론이 영 받아들이기 싫었어요. 그래서 직접 '끔찍한 결론'이라는 이름까지 붙이고 빠져나갈 길을 찾으려 애썼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는 평생 매달리고도 깔끔한 답을 찾지 못했어요. 책 곳곳에서 '아직 못 풀었다'고 정직하게 인정하고요. 그런데도 그가 위대하다고 불리는 건, 아무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던 이 질문들을 또렷한 모양으로 깎아내 우리 앞에 올려놨기 때문이에요.

데릭 파핏은 '나는 누구인가'와 '아직 없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는가'라는 두 큰 질문을 평생 파고든 철학자예요. 그는 정말 중요한 건 변하지 않는 '나'라는 알맹이가 아니라 끊김 없이 이어지는 흐름이라고 봤고, 그 생각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조금 덜어냈어요. 또 미래 세대를 향한 우리의 책임이 생각보다 훨씬 까다로운 문제라는 걸 또렷이 드러냈고요. 답을 다 못 찾았다고 솔직히 적은 점까지, 어쩌면 그게 진짜 철학자의 모습일지도 몰라요. 다음에 순간이동 기계 같은 상상을 마주치면, '저게 과연 나일까' 하고 한 번 멈춰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그 멈칫이 바로 파핏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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