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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새 학기 첫날을 떠올려 볼게요. 교실 문이 열리고 처음 보는 어른이 쑥 들어와서 "너희 반장은 내가 정해 줄게"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다들 고개를 갸웃할 거예요. "반장은 우리가 직접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고요. 우리 일은 우리가 정하고 싶은 마음, 이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떠오르는 아주 자연스러운 생각이죠. 그런데 약 700년 전 유럽에서는 이 당연해 보이는 생각이 꽤 위험한 주장이었어요. 그 생각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글로 적어 둔 사람이 바로 마르실리우스 파도바예요. 오늘은 이 낯선 이름을 가진 사람이 무슨 질문을 던졌는지 같이 따라가 볼게요.

마르실리우스가 살던 중세 유럽에는 사람을 다스리는 큰 힘이 두 개 있었어요. 하나는 왕이나 황제 같은 세속 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였어요.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은 단순히 기도만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왕보다 자기가 더 높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았어요. 마치 한 학교에 교장 선생님이 둘 있는데 서로 "내가 더 위야" 하고 날마다 다투는 셈이었죠. 이 다툼은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누가 더 높은지를 두고 군대가 움직이고, 전쟁이 나고, 애꿎은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자주 벌어졌어요. 마르실리우스는 바로 이 끝없는 싸움을 멀쩡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마르실리우스는 1275년쯤 이탈리아 파도바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그래서 이름 뒤에 고향 이름인 파도바가 붙은 거예요. 그는 원래 사람 몸을 고치는 의사 공부를 했고, 1313년에는 파리 대학의 총장을 잠깐 맡기도 했어요. 그러다 1324년, 마흔 살을 넘긴 나이에 그는 한 권의 책을 써요. 제목은 "평화의 수호자"였어요. 제목 그대로, 끝없는 다툼을 멈추고 평화를 지키려면 도대체 누가 진짜 힘을 가져야 하는지, 그 답을 찾으려 한 책이었죠. 몸을 고치던 사람이 이번에는 사회의 병을 고칠 처방을 적기 시작한 거예요.

그의 답은 놀랍도록 단순했어요. 법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즉 인민이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죠. 앞에서 본 교실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반의 규칙은 바깥에서 들어온 어른이 아니라 그 반 친구들이 모여서 정하는 게 맞잖아요. 마르실리우스도 똑같이 생각했어요. 나라의 법을 만들 권리, 어려운 말로 입법권은 왕 한 사람이나 교황이 아니라 시민 전체에게 있다고요. 그럼 왕이나 다스리는 사람은 뭐냐고요? 그들은 사람들이 정한 법을 대신 집행하라고 뽑아서 맡긴 일꾼일 뿐이라는 거예요. 주인은 따로 있고, 다스리는 사람은 그 주인의 부탁을 받은 관리인인 셈이죠.

또 하나 중요한 주장이 있었어요. 교회는 사람의 마음과 믿음을 돌보는 곳이지, 죄지은 사람을 붙잡아 가두거나 벌주는 힘까지 가져선 안 된다는 거였죠. 누군가를 실제로 처벌하는 강제력은 오직 세속 정부에게만 있어야 한다고 봤어요. 비유하면 이래요. 교회는 좋은 길을 알려 주는 안내자예요. 길을 잘못 들면 "그쪽은 아니에요" 하고 일러 줄 수는 있죠. 하지만 규칙을 어긴 사람을 실제로 붙잡아 벌하는 일은 그 일을 맡도록 정해진 사람의 몫이에요. 안내하는 사람과 붙잡는 사람을 한 손에 쥐여 주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어요.

이런 주장은 당시 교황에게 엄청난 도전이었어요. 자기 권위를 뿌리째 흔드는 말이었으니까요. 결국 1327년, 교황은 마르실리우스를 이단으로 몰아 처벌하려 했어요. 그는 붙잡히지 않으려고 교황과 사이가 나빴던 황제 루트비히 4세의 곁으로 몸을 피했고, 그 보호를 받으며 지내다 1342년쯤 세상을 떠났어요. 책 한 권 때문에 인생의 후반을 내내 쫓기며 산 셈이죠.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그의 생각이 세상을 통째로 흔들 만큼 셌다는 뜻이기도 해요.

오늘날 우리는 시민이 투표로 대표를 뽑고, 종교와 정치가 서로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겨요. 그런데 이 당연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에요. 누군가는 처음으로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야 했죠. 마르실리우스는 아무도 크게 말하지 못하던 시절에, 힘은 위가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나온다는 생각을 또렷이 적어 둔 사람이에요. 그래서 많은 이들이 그를 근대 정치철학을 멀리서 미리 알린 중세 사상가라고 불러요.

마르실리우스 파도바는 약 700년 전, 법은 왕이나 교황이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에요. 교회는 마음을 돌보고, 처벌 같은 실제 힘은 세속 정부가 갖는다며 둘을 나누어 보기도 했고요. 그 생각 때문에 평생 쫓기는 신세가 됐지만,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습의 작은 씨앗이 그 책 안에 담겨 있었어요. 다음에 "이 규칙은 누가 정한 거지?" 하는 의문이 문득 들면, 700년 전에 똑같은 질문을 용감하게 던진 한 사람을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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