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 여행자가 낯선 마을에 막 도착했어요. 광장에는 군인들이 마을 사람 스무 명을 줄 세워 놓고 곧 총살하려는 참이에요. 그때 대장이 여행자에게 묘한 제안을 던져요. "당신이 직접 이 중 한 명을 쏘면, 나머지 열아홉 명은 풀어 주겠소." 거절하면 스무 명이 전부 죽고요.
숫자만 보면 답은 이미 나온 것 같아요. 한 명이 죽는 것보다 열아홉 명이 사는 게 낫잖아요. 그런데 막상 손에 총이 쥐어지면 쉽게 방아쇠를 당길 수가 없어요. 머리로 푼 답과 실제로 해내는 일 사이에 깊은 골이 있는 거죠. 영국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는 바로 이 머뭇거림을 허투루 넘기지 않았어요. 그는 1929년부터 2003년까지 살면서, '계산만 깔끔하게 하면 도덕 문제는 풀린다'는 생각에 평생 토를 달았던 사람이에요.

윌리엄스가 짚은 핵심은 이거예요. 결과만 따지는 셈법은 "누가 그 일을 하느냐"를 슬쩍 지워 버려요. '열아홉 명이 산다'는 좋은 결과만 화면에 남고, 그 방아쇠를 당기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은 계산에서 사라지죠. 마치 내가 세상의 좋고 나쁨을 옮기는 통로일 뿐, 그 안에 정작 내가 없는 것처럼요.
비유하자면 친구가 옆에서 "고민할 게 뭐 있어, 답 나왔잖아" 하며 등을 떠미는 거예요. 친구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그런데 그 일을 직접 저지르고, 밤마다 떠올리며 평생 안고 살 사람은 친구가 아니라 나예요. 윌리엄스는 이걸 '진실성'의 문제라고 불렀어요. 내가 오래 지켜 온 신념과 약속이 차곡차곡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는데, "더 좋은 결과를 위해 그냥 제쳐 둬" 하고 떠미는 건 잠깐 나를 내려놓으라는 말과 같거든요. 사람을 좋은 결과를 뽑아내는 기계처럼 다루는 윤리학에, 그는 줄곧 불편해했어요.

조금 다른 장면도 있어요. 한 트럭 운전사가 신호를 다 지키며 천천히 달리는데, 아이가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사고가 나요. 누가 봐도 운전사 잘못이 아니에요. 경찰도, 길에서 본 사람도 "당신 책임이 아니에요" 하고 말해 주죠. 하지만 운전사 마음에 남는 무게는 구경꾼의 안타까움과는 분명히 달라요.
보통의 도덕 이론은 "네 책임이 아니니 괴로워할 이유가 없다"고 깔끔하게 정리해 버려요. 윌리엄스는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고 봤어요. 내 손을 거쳐 벌어진 일에는, 잘못이 없어도 남는 특별한 후회가 있어요. 남이 보기엔 똑같은 사고라도, 핸들을 쥐고 있던 사람에게는 다른 무게로 남는 거죠. 그는 이 마음을 '쓸데없는 감정'이라며 치우지 말자고 했어요. 오히려 그게 자기 행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다운 도덕 감정이라고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봐요. 한 화가가 가족을 남겨 두고 먼 섬으로 떠나요. 오직 그림에 인생을 통째로 걸어 보려고요. 이 선택을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가족을 버린 무책임한 가출일까요, 아니면 자기 길을 찾은 위대한 결단일까요?
윌리엄스는 솔직하게 말해요. 그 평가는 그가 끝내 훌륭한 화가가 되느냐에 적잖이 달려 있다고요. 위대한 그림을 남기면 '용기 있는 결단'이 되고, 그저 그런 화가로 끝나면 '이기적인 도피'가 되죠. 그런데 화가로 성공할지 못 할지는 그 사람이 다 어쩌지 못하는 일, 즉 운이 잔뜩 섞인 일이에요. 결국 도덕적 평가에도 운이 슬그머니 끼어든다는 거죠. 그는 이걸 '도덕적 운'이라고 불렀어요. "도덕만큼은 내 노력으로 온전히 통제된다"는 든든한 믿음에 금이 가는 순간이에요. 받아들이기 불편하지만, 우리 삶이 실제로 굴러가는 모습에는 이쪽이 훨씬 가까워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윌리엄스가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예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넓고 큰 물음을, '무엇이 의무이고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라는 좁은 방에만 가두지 말자는 거죠.
그는 의무와 죄책감만 따지고 드는 이 좁은 틀을 '유별난 제도'라고 꼬집었어요. 삶에는 의무 말고도 부끄러움, 후회, 사랑, 운처럼 도덕과 깊이 얽힌 색깔이 훨씬 많은데, 그걸 전부 규칙과 비난이라는 하나의 자로만 재려 하면 정작 중요한 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고요. 그가 멀리서 내려다보는 거창한 이론을 자꾸 의심한 이유도 여기 있어요. 칠판 위에서는 깔끔하던 공식이, 막상 살아 있는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사정 앞에 서면 너무 많은 걸 놓치고 마니까요.

버나드 윌리엄스는 '도덕은 결국 계산이다'라는 생각을 끝까지 의심한 사람이에요. 좋은 결과를 위해 내가 누구인지를 지우라는 요구에는 진실성으로 맞섰고, 내 잘못이 없어도 남는 후회를 외면하지 않았으며, 도덕 안에 운이 끼어든다는 불편한 사실도 눈 감지 않고 인정했어요. 그가 우리에게 남긴 건 외우기 좋은 정답이 아니라, 사람의 삶은 어떤 공식보다 복잡하니 그 복잡함을 함부로 지우지 말라는 당부예요. 다음에 누군가 "답은 뻔하잖아" 하며 당신 등을 떠밀 때, 잠깐 멈춰 서서 "그런데 그 일을 하는 게 나라면?" 하고 되물어 보는 것. 그게 윌리엄스가 건넨 작은 선물이에요.
3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