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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여러분 반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친구가, 졸업하고 편한 직장 대신 시끄럽고 위험한 공장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어떨까요? 시몬 베유가 딱 그런 사람이었어요. 1909년에 태어나 1943년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인데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학교를 나와 여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었어요. 오빠 앙드레 베유가 나중에 세계적인 수학자가 됐을 만큼, 머리 좋은 집안이었고요. 그런데 시몬은 1934년 무렵, 일부러 자동차 공장에 평범한 노동자로 들어가 1년 가까이 일했어요. 책으로만 읽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알고 싶었거든요. 손이 부르트고 기계 소리에 하루 종일 시달리는 생활을 직접 겪고 나서야, 남의 고통을 진짜로 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베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주의'예요. 어렵게 들리지만 사실 단순해요. 친구가 속상한 일을 이야기할 때,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면서 듣는 사람이 있고, 내 생각을 잠시 멈추고 친구 말만 가만히 듣는 사람이 있죠. 베유가 말한 주의는 두 번째예요. 내 욕심과 판단을 비우고, 앞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는 이걸 가장 귀하고 순수한 너그러움이라고 불렀어요. 누군가에게 지금 어떠냐고 묻고, 휴대폰을 내려놓은 채 진짜로 답을 기다리는 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해 보면 무척 어렵다는 걸 우리는 알죠.

우리는 보통 아픈 것과 힘든 것을 비슷하게 봐요. 그런데 베유는 잠깐의 통증과, 사람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깊은 고통을 나눠서 생각했어요. 프랑스어로 말뢰르라고 부른 이 고통은, 몸의 아픔에 더해 마음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까지 짓밟히는 상태예요. 예를 들어 그냥 다치기만 한 게 아니라, 아무도 내 사정을 봐 주지 않고 나 자신조차 스스로를 하찮게 느끼게 되는 거죠. 베유는 이런 고통에 빠진 사람일수록 남들이 눈을 돌리기 쉽다고 봤어요.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니까요. 그래서 더더욱, 고개를 돌리지 말고 똑바로 봐 주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베유에게 정의는 법전에 적힌 규칙만이 아니었어요. 그는 길에서 누가 맞고 있을 때, 왜 나를 아프게 하느냐는 그 외침에 귀 기울이는 것이 정의의 시작이라고 봤어요. 힘센 사람의 말은 가만있어도 잘 들리지만, 약한 사람의 목소리는 일부러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리니까요. 그가 공장에 들어가고,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잠깐 참여하고, 평생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선 것도 모두 이 생각과 이어져요. 정의란 멀리 떨어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짓밟히는 사람 곁에 서서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라는 거죠.

베유는 삶의 끝 무렵 깊은 종교 체험을 했어요. 기독교에 강하게 끌렸고 신을 향한 글도 많이 남겼지만, 끝까지 정식으로 세례를 받지는 않았어요. 교회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 함께 있고 싶었거든요. 한곳에 소속되어 안에 머물기보다, 고통받는 모든 사람 곁에 남으려 한 거예요. 그는 1943년, 서른넷이라는 젊은 나이에 영국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전쟁 중 점령당한 고국 사람들이 먹는 만큼만 먹겠다며 음식을 줄인 것이 병을 더 키웠다고 전해져요. 짧은 삶이었지만, 자기 생각을 끝까지 몸으로 살아 낸 사람이었어요.

시몬 베유는 어려운 이론보다, 남의 고통을 똑바로 보는 일을 철학의 한가운데 둔 사람이에요. 주의는 내 생각을 비우고 앞사람 말을 끝까지 듣는 것, 고통은 사람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깊은 아픔, 정의는 약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었죠. 똑똑한 학생이 공장으로 간 이유도, 세례를 끝까지 미룬 이유도 모두 여기서 나와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딴생각 없이 끝까지 들어 준 적이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베유가 말한 철학을 한 조각 해 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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