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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동네 빵집 문을 열면 갓 구운 빵이 줄지어 있어요. 그런데 빵집 주인은 여러분을 사랑해서, 여러분이 굶을까 봐 새벽부터 반죽을 한 게 아니에요. 자기가 돈을 벌고 싶어서 구운 거예요. 그런데 신기하죠. 주인은 자기 이익을 챙겼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우리 동네 사람들은 따뜻한 빵을 먹게 됐어요. 약 250년 전, 이 평범한 장면을 골똘히 들여다본 사람이 있어요. 바로 애덤 스미스예요.

애덤 스미스는 1723년부터 1790년까지 살았던 스코틀랜드 사람이에요. 흔히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지만, 사실 그의 본래 직업은 대학에서 사람의 마음과 옳고 그름을 가르치던 도덕철학 선생님이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윤리 선생님에 가까워요. 그는 평생 두 권의 큰 책을 남겼는데,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다룬 '도덕감정론'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과 돈을 다룬 '국부론'이에요. 많은 사람이 둘 중 뒤엣것만 기억하지만, 두 책은 사실 한 사람 머릿속에서 나온 짝이에요.

앞의 빵집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빵집 주인도, 정육점 주인도, 다들 자기 살림을 챙기려고 부지런히 일해요. 그런데 그 따로따로의 욕심들이 모이면, 누가 위에서 지휘하지 않아도 동네에 필요한 물건이 알맞게 채워져요. 스미스는 이걸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불렀어요. 마치 보이지 않는 손 하나가 흩어진 사람들을 슬쩍슬쩍 좋은 방향으로 밀어주는 것 같다는 비유예요.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각자 열심히 살다 보니 저절로 질서가 생긴다는 이야기죠.

여기서 멈추면 스미스를 절반만 아는 거예요. 사람들이 '나만 잘되면 돼'라고 속이고 빼앗기 시작하면 시장은 곧 엉망이 돼요. 빵에 돌을 섞어 팔고, 약속을 어기고, 저울을 속이면 아무도 거래하려 들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스미스는 더 젊을 때 쓴 '도덕감정론'에서 다른 질문을 먼저 던졌어요. 사람은 왜 남의 처지를 헤아릴까. 그가 찾은 답은 '공감'이었어요. 우리는 옆 사람이 넘어지면 나도 모르게 '아!' 하고, 누가 울면 마음 한구석이 같이 무거워져요. 이 타고난 공감이 있어서 사람은 제멋대로 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스미스는 우리 마음 안에 작은 심판이 한 명 산다고 봤어요. 그는 이걸 '공정한 관찰자'라고 불렀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하려 할 때, 마음속에서 한 발 떨어진 누군가가 '그 행동,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봐도 떳떳하니?'라고 묻는 목소리예요. 우리가 아무도 안 볼 때조차 양심에 찔리는 건 이 관찰자 때문이라는 거죠. 시장에서 사람들이 그래도 정직하게 거래하는 이유도 여기 있어요. 법이 무서워서만이 아니라, 내 안의 심판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싶어서요.

이제 두 책이 왜 짝인지 보이죠. '도덕감정론'은 사람 마음에 공감과 양심이라는 바탕이 깔려 있다고 말해요. '국부론'은 그 바탕 위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면 사회가 풍요로워진다고 말하고요. 그러니까 스미스가 그린 시장은 '욕심껏 다 해먹는 곳'이 아니라, '서로를 신뢰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각자 부지런히 일하는 곳'이에요. 공감이라는 땅 위에 시장이라는 집을 지은 셈이죠. 흔히 그를 '욕심을 옹호한 사람'으로 오해하지만, 그는 욕심과 양심을 함께 본 사람이에요.

애덤 스미스는 빵집 주인의 평범한 아침에서 큰 질문을 길어 올린 사람이에요. 그는 사람이 각자 자기 이익을 좇아 일해도, '보이지 않는 손'처럼 사회 전체에 필요한 것이 채워진다고 봤어요. 하지만 그 시장이 잘 굴러가려면 바탕에 공감과 마음속 '공정한 관찰자'가 있어야 한다고도 했죠. 그래서 그의 두 책,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따로가 아니라 한 묶음이에요. 다음에 빵집 앞을 지날 때, 그 따뜻한 빵 한 덩이 뒤에 욕심과 양심을 나란히 들여다본 한 철학자가 있었다는 걸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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