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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사람이 종이에 자기가 가진 가장 좋은 점들을 적었어요. 따뜻한 마음, 슬기로움, 끝없는 사랑, 무엇이든 해내는 힘. 한참 적고 나서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해요. "이건 내 것이 아니야. 저 위에 계신 분 거야." 자기 손으로 적어 놓고는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밀어내는 거죠.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지금부터 백팔십 년쯤 전에, 한 독일 철학자가 바로 이 장면을 오래 들여다봤어요. 그 사람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예요. 오늘은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1804년에 태어나 1872년에 세상을 떠난 독일 사람이에요. 예순여덟 해를 산 셈이죠. 처음에는 신학, 그러니까 신에 대해 공부하는 학생이었어요. 신을 멀리하려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신을 아주 진지하게 공부하던 사람이었던 거죠. 그런데 공부를 할수록 마음속에서 질문 하나가 점점 커졌어요. "우리가 말하는 신은 정말 저 하늘에 따로 계신 걸까, 아니면 사람 마음에서 피어난 걸까?" 그는 이 질문을 1841년에 펴낸 책 한 권에 모두 담았어요.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기독교의 본질'이에요.

포이어바흐의 핵심 생각은 의외로 단순해요. 사람이 신을 떠올릴 때, 사실은 자기 안에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한데 모아 아주 크게 키운 다음 하늘로 올려 보낸다는 거예요.
비유를 하나 들어볼게요. 손전등을 켜고 벽에 손그림자를 만들어 본 적 있죠? 토끼 모양, 새 모양. 그 그림자는 벽에 따로 사는 동물이 아니라 내 손이 만든 거예요. 손을 치우면 그림자도 사라지고요. 포이어바흐는 신도 이와 비슷하다고 봤어요. 사람의 사랑과 지혜와 힘을 한껏 키워 벽에 비춘 커다란 그림자라는 거죠. 이렇게 내 안의 것을 밖으로 던져 비추는 일을 어려운 말로 '투사'라고 해요. 마음속 모습을 바깥에 쏘아 보낸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그가 걱정한 진짜 문제가 나와요. 그림자를 만든 건 분명 내 손인데, 사람들이 그 큰 그림자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느끼기 시작해요. "나는 작고 못났어. 저기 저 큰 존재만 위대해."
자기가 가진 좋은 점을 전부 신에게 건네고 나니, 정작 자기 손에는 아무것도 안 남은 것처럼 느끼는 거예요. 용돈을 몽땅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는 "난 가진 게 하나도 없어" 하며 시무룩해지는 것과 비슷해요. 분명 내 돈인데도요. 이렇게 자기 것을 내주고 도리어 자기가 초라해지는 일을 '소외'라고 불러요. 멀어진다는 뜻이죠. 포이어바흐는 종교가 사람을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사실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고요. 그가 바란 건 신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밖으로 내준 좋은 점을 도로 자기 품에 가져와 스스로를 작게 여기지 않는 거였어요.

포이어바흐보다 앞선 시대에 헤겔이라는 아주 유명한 철학자가 있었어요. 헤겔은 세상의 바탕에 거대한 '정신'이나 '생각'이 먼저 있다고 봤어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정신이 먼저라는 거죠.
포이어바흐는 이 순서를 뒤집어 발을 땅에 내려놓았어요. 먼저 있는 건 살아 있는 사람, 배고프고 사랑하고 아파하는 진짜 몸이라고요. 생각이 사람을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있어서 생각이 생긴다는 거예요. 이 방향 바꾸기가 뒤에 온 여러 사상가에게 큰 힌트가 됐어요. 특히 카를 마르크스가 바로 이 자리에서 출발했죠.

포이어바흐의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래요. 우리가 하늘을 향해 그린 가장 좋은 모습은, 사실 사람 자신의 얼굴일 수 있다는 거예요. 손그림자를 만든 게 결국 내 손이듯이요. 그는 그 좋은 점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주어, 누구도 스스로를 작게 느끼지 않기를 바랐어요. 신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그의 말은, 결국 사람을 똑바로 한번 바라보자는 다정한 초대였던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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