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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 이야기를 하다 보면 중세의 큰 이름으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꼭 나와요. 그런데 그로부터 300년쯤 흐른 뒤, 중세 철학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활짝 피고 깔끔하게 정리된 자리에 또 한 사람이 서 있었어요. 바로 프란시스코 수아레스예요. 이름은 낯설지만, 100년쯤 뒤의 근대 철학자들이 학생 때 그의 책을 교재로 펼쳐 들었을 만큼 묵직한 인물이었답니다. 오늘은 이 잊힌 거인을 천천히 만나 볼게요.

수아레스는 1548년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태어나, 1617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눈을 감았어요. 예순아홉 해를 산 셈이죠. 그는 예수회라는 가톨릭 수도회의 신부였고, 살라망카와 코임브라 같은 이름난 대학에서 수십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재미있는 건,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가 어린 학생 시절엔 공부를 영 못해서 거의 포기할 뻔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섭게 따라잡더니, 나중엔 사람들이 그를 '뛰어난 박사'라는 별명으로 부를 만큼 깊은 학자가 되었답니다.

그 시절 철학 공부는 보통 이런 식이었어요. 천 년도 더 전 사람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펼쳐 놓고, 그 문장 옆 여백에 "이 대목은 이런 뜻이에요" 하고 설명을 다는 거였죠. 교과서에 형광펜 긋고 메모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돼요. 그런데 수아레스는 1597년에 『형이상학 논고』라는 책을 내면서 방식을 통째로 바꿨어요. 남의 책을 한 줄씩 따라가는 대신, 묻고 싶은 큰 질문 쉰네 개를 직접 골라 주제별로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 엮은 거예요. 흩어진 쪽지들을 모아 한 권의 백과사전으로 묶은 셈이죠. 그래서 이 책은 두툼한 두 권짜리 묶음이 되었어요.

형이상학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죠. 쉽게 말하면, 눈앞의 물건 하나하나를 따지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있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를 캐묻는 가장 밑바닥 질문이에요. 사과가 빨갛다는 걸 넘어서, '있다'와 '하나'와 '같다' 같은 말의 정체를 들여다보는 거죠. 바닥을 파고들어 집의 주춧돌을 살피는 일과 비슷해요. 수아레스는 이 까다로운 질문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놓아서, 뒷사람들이 형이상학을 공부할 때 그의 책을 지도처럼 펴 놓고 길을 찾았어요.

수아레스는 철학만 한 게 아니라 법과 권력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들었어요. 그 시대 임금들은 흔히 "내 권력은 하늘이 곧바로 내게 내려 줬다"고 말했어요. 신이 임금 한 사람을 콕 집어 뽑았다는 거죠. 그런데 수아레스는 1612년 『법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다르게 봤어요. 권력은 원래 사람들 모두, 그러니까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이고, 그 사람들이 그 힘을 임금에게 잠시 맡긴 것뿐이라고요. 반장의 힘이 선생님 한 분이 아니라 표를 던진 반 친구들에게서 나오는 것과 비슷해요.

이 생각은 당시로서는 꽤 대담했어요. 실제로 수아레스가 영국 왕 제임스 1세의 주장에 맞서 책을 쓰자, 화가 난 왕은 그 책을 런던 광장에서 불태우게 했다고 해요. 권력이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왕에게는 그만큼 거슬렸던 거죠. 글 한 편이 나라 사이의 외교 문제가 될 정도였으니, 그의 펜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짐작이 가요. 이런 생각들은 훗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약속을 다루는 국제법, 그리고 권력의 뿌리를 묻는 근대 정치 사상으로 이어지는 작은 씨앗이 되었어요.

수아레스는 중세 내내 이어진 스콜라 철학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맨 끝에서 한데 모아 깔끔하게 정리한 사람이에요. 앞선 수백 년의 논쟁을 빠짐없이 살펴 자기 식으로 묶어 냈죠. 그래서 그의 책은 가톨릭 학교만이 아니라 개신교 지역 대학에서도 교재로 쓰였고,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 같은 근대 철학자들도 젊은 시절 그의 정리를 통해 옛 철학을 익혔어요. 옛 시대와 새 시대 사이에 놓인 튼튼한 다리 하나가 바로 그였던 셈이에요.

프란시스코 수아레스는 1548년부터 1617년까지 살았던 스페인의 신부이자 학자였어요. 그는 흩어져 있던 형이상학 질문들을 주제별 백과사전처럼 새로 묶어 냈고, 권력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나온다고 말해 임금과도 부딪쳤죠. 화려한 사건은 적지만, 천 년 묵은 중세 철학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근대로 넘겨준 다리 같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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