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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영국 맨체스터의 공장 거리를 한번 떠올려 볼까요. 지금으로부터 180년쯤 전, 이곳에는 실을 뽑고 천을 짜는 공장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어요. 그 공장 가운데 하나를 관리하던 스무 살 남짓한 청년이 있었어요. 이름은 프리드리히 엥겔스. 부유한 천 공장 집안의 아들이라 돈 걱정은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이 청년은 일이 끝나면 좀 이상한 일을 했어요. 노동자들이 사는 좁고 어두운 골목을 직접 걸어 다니면서,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수첩에 꼼꼼히 적었거든요. 공장 집 아들이 도리어 일하는 사람들 편에서 기록을 남긴 거예요. 그가 스물네 살에 펴낸 그 기록이 바로 첫 책이 됐어요.

얼마 뒤 엥겔스는 카를 마르크스라는 사람을 만나요. 둘은 처음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생각이 척척 맞았어요. 학교에서 단짝을 만나면 말이 끊기지 않는 것처럼요. 이때부터 두 사람은 거의 40년 동안 함께 글을 쓰고, 편지를 주고받고, 같은 꿈을 키웠어요. 흔히 마르크스라는 이름만 유명하지만, 그 옆에는 늘 엥겔스가 있었어요. 마르크스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가수였다면, 엥겔스는 곡을 같이 만들고 무대를 받쳐 준 사람에 가까웠지요. 둘이 함께 만든 생각은 그래서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둘의 합작품이에요.

여기서 두 사람이 함께 다듬은 핵심 생각 하나를 살펴볼게요. 우리는 보통 멋진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고 배워요. 훌륭한 왕이나 똑똑한 철학자의 머릿속에서 역사가 흘러나온다고요.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이걸 거꾸로 봤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래요. 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는지, 점심에 뭘 먹을 수 있는지가 그날의 기분과 계획을 정하잖아요. 먹고사는 형편이 먼저고, 생각은 그 위에 얹히는 거예요. 이걸 어려운 말로 역사유물론이라고 불러요. 사람들이 먹고살려고 물건을 만들고 나누는 방식이 바뀌면, 그에 따라 사회의 법과 신분과 생각까지 바뀐다는 뜻이에요. 머리가 아니라 손과 배가 역사를 끌고 간다고 본 셈이지요.

공장 시대를 다시 떠올려 볼까요. 기계와 공장을 가진 몇 사람은 점점 부자가 되는데,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들은 좁은 골목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엥겔스는 이 격차가 사람 탓이 아니라 구조 탓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두 사람은 다른 그림을 그렸어요. 공장처럼 물건을 만들어 내는 큰 도구를 몇몇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가지면, 그 열매도 모두가 더 공평하게 나눌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이었지요. 반에서 한 사람만 공을 독차지하지 않고 다 같이 쓰는 모습과 비슷해요. 이 구상을 사회주의라고 불러요. 두 사람은 1848년에 이 생각을 짧고 강하게 담은 글을 함께 펴내 세상에 알렸어요.

엥겔스가 정말 대단했던 건 끝까지 친구 곁을 지킨 점이에요. 마르크스가 가난할 때, 엥겔스는 공장에서 번 돈으로 오랫동안 생활비를 보태 줬어요. 친구가 마음 놓고 연구만 하도록 뒤를 받쳐 준 거예요. 마르크스가 1883년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대표작인 자본론은 1권만 나온 상태였어요. 남은 건 마르크스가 휘갈겨 놓은 메모 더미뿐이었지요. 엥겔스는 그 어지러운 메모를 10년 넘게 붙들고 정리해서 2권과 3권을 대신 펴냈어요. 친구의 미완성 그림을 끝까지 색칠해 완성해 준 셈이에요. 그리고 1895년, 엥겔스도 일흔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공장 집 아들이면서도 일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평생을 보낸 사람이에요. 마르크스와 짝을 이뤄, 멋진 생각이 아니라 먹고사는 형편이 역사를 움직인다고 본 역사유물론을 세웠고, 큰 생산 도구를 함께 나누자는 사회주의 구상을 다듬었어요. 무대 뒤에서 친구를 돈으로 받치고, 친구가 남긴 책까지 끝까지 완성해 준 사람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엥겔스를 기억할 때는 마르크스의 그늘이 아니라, 한 가지 생각을 둘이 함께 끝까지 밀고 간 든든한 동행으로 떠올리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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