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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은 캐나다에 사는 한 할아버지 철학자를 소개할게요. 이름은 찰스 테일러예요. 1931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났으니, 지금은 아흔이 훌쩍 넘은 분이에요.
이분이 평생 붙잡고 늘어진 질문은 의외로 단순해요. "도대체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일곱 살 어린이도 던질 법한 질문이죠. 그런데 테일러는 이 질문에 무려 900쪽이 넘는 두꺼운 책으로 답하기도 했어요. 웬만한 사전만큼 두꺼운 책이에요. 오늘은 그 두꺼운 책 속 이야기를, 우리 일상의 장면으로 바꿔서 천천히 들려드릴게요.

새 학기 첫날을 떠올려 봐요.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르고,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몰라요. 어쩐지 내가 흐릿한 사람이 된 기분이죠. 그러다 짝꿍이 "너 그림 진짜 잘 그린다"라고 말해 주는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 또렷해져요. '아,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생기는 거예요.
테일러는 바로 이 장면이 사람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라고 봤어요. 우리는 거울 없이 내 얼굴을 못 보듯, 다른 사람의 말과 눈빛 없이는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몰라요. 그래서 나라는 사람은 혼자 방에 앉아 완성되는 게 아니라, 늘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조금씩 만들어진다고 했어요. 이걸 좀 어려운 말로 '대화적 자아'라고 불러요. 나를 알려면 항상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그럼 반대로, 아무도 나를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생각해 봐요. 친구들이 자꾸 내 이름을 틀리게 부르거나, "너 같은 애가 뭘" 하고 비웃는다면요. 단순히 기분이 나쁜 걸 넘어서, 정말로 내가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해요. 잘못된 거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진짜 내 모습까지 일그러져 보이는 거죠. 테일러는 이렇게 사람을 잘못 비춰 주는 일이 마음에 진짜 상처를 남긴다고 했어요.
이 생각을 사회 전체로 넓힌 게 '인정 정치'예요. 어떤 집단이 오래도록 무시당하면, 그 사람들은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뿐 아니라 '우리를 우리답게 알아봐 달라'는 것까지 요구하게 돼요. 여성, 소수 민족,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일이죠. 테일러는 1992년에 쓴 글에서, 바로 이 '알아봐 달라'는 외침이 왜 현대 사회의 큰 다툼거리가 되었는지를 차분히 짚어 줬어요.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게요. 약 500년 전 유럽을 상상해 봐요. 그때는 신을 믿는 게 너무나 당연해서, 안 믿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조차 어려웠어요. 마치 지금 우리가 "공기가 없다고?"라는 말을 들으면 황당해하는 것처럼요. 믿음은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숨 쉬는 공기 같았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믿는 사람도 있고, 안 믿는 사람도 있고, 믿다가 마는 사람도 있어요. 테일러는 2007년에 낸 책에서 이 변화의 핵심을 콕 집었어요. 세속화란 그냥 '신을 안 믿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이 '당연한 것'에서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바뀐 것이라고요. 그래서 믿는 사람조차 이제는 한 번쯤 "정말 그럴까?" 하고 흔들려 본다는 거예요. 답이 정해져 있던 세상에서, 각자 답을 골라야 하는 세상으로 넘어온 셈이죠.

이제 두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 볼게요. 한쪽에서 우리는 남이 알아봐 줘야 비로소 내가 돼요. 다른 한쪽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지조차 스스로 골라야 해요.
그래서 현대를 사는 나는 자유롭지만, 동시에 자주 불안해요. 미리 정해진 답이 없으니 "이게 진짜 나일까?",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을 자꾸 끌어안고 살게 돼요. 테일러는 이렇게 흔들리는 우리를 야단치지 않았어요. 대신 이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조건이라고,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찬찬히 그려 보여 줬어요. 우리가 왜 이렇게 '나답게'라는 말에 매달리며 사는지, 그 뿌리를 함께 들여다보게 해 준 거죠.

찰스 테일러는 "나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을 평생 따라간 철학자예요. 그는 우리가 남과의 대화 속에서 비로소 내가 되고, 그래서 서로 제대로 알아봐 주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다고 했어요. 또 믿음이 당연하던 세상이 선택의 세상으로 바뀌면서, 우리가 자유로워진 만큼 불안해졌다고 봤고요. 다음에 "이게 진짜 나일까" 하고 흔들릴 때, 그건 나만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모두가 함께 겪는 조건이라는 것. 테일러가 건네고 싶었던 위로는 아마 그거였을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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