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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술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무엇이 떠오르나요. 스마트폰, 자동차, 공장 기계 같은 것일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기술을 '편리한 도구'나 '기계 덩어리'라고 생각해요. 망치가 못을 박는 도구이듯이, 기술도 사람이 목적을 이루려고 쓰는 수단일 뿐이라고요.
그런데 한 독일 철학자가 이렇게 말했어요. "기술의 본질은 전혀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무슨 말장난 같죠. 기술의 본질이 기술이 아니라니요. 이 사람이 보기에 진짜 중요한 건 기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었어요. 그 눈에 그가 붙인 이름이 바로 몰아세움이에요.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은 마르틴 하이데거예요. 1889년부터 1976년까지 살았던 독일 철학자죠. 그는 젊을 때부터 아주 이상한 질문 하나에 매달렸어요.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컵이 있다, 내가 있다, 시간이 있다, 다 똑같이 '있다'라고 말하는데 그게 정말 같은 뜻일까. 이 물음을 파고든 책이 그 유명한 '존재와 시간'이에요.
그러니까 하이데거는 기계를 연구한 공학자가 아니에요. 평생 '무언가가 우리에게 어떻게 모습을 드러내는가'를 캐물은 사람이에요. 그가 나이 들어 기술을 이야기한 것도 같은 관심에서였어요. 기술 시대에는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그게 궁금했던 거죠.

여기 강이 하나 흐른다고 해 봐요. 옛날 사람은 강가에 물레방아를 놓았어요. 물레방아는 흐르는 물에 바퀴를 살짝 맡겨 두고, 물이 흐르는 만큼만 천천히 돌아요. 강은 여전히 그냥 강으로 흐르고, 바퀴는 그 흐름에 얹혀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현대인은 같은 강에 거대한 댐을 세워요. 댐은 강을 콱 막아 가두고, 물의 힘을 짜내서 전기로 바꿔요. 이제 강은 '흐르는 강'이 아니라 '전기를 뽑아낼 발전소'로 보여요. 같은 강인데 댐을 세우는 순간, 강은 우리에게 언제든 전력을 내놓아야 하는 공급처가 되어 버린 거예요. 하이데거가 댐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 건 댐이 더러워서가 아니라, 강을 이렇게밖에 못 보게 된 우리의 눈 때문이었어요.

이렇게 보면 강만 그런 게 아니에요. 숲은 '목재 창고', 땅은 '석탄 매장지', 바람은 '풍력 자원'이 돼요. 모든 것이 언제든 꺼내 쓰려고 줄 세워 둔 재료처럼 보이죠. 하이데거는 이렇게 대기 상태로 세워진 것들을 부품이라고 불렀어요. 스마트폰을 늘 충전기에 꽂아 두듯, 세상 전체가 '필요하면 바로 뽑아 쓸 수 있게' 대기하고 있는 상태예요.
무서운 건 사람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우리는 사람을 '인력', '인적 자원'이라고 부르잖아요. 회사가 필요할 때 채워 넣고 필요 없으면 빼는 부품처럼요. 이 말투 속에 이미 그 눈이 들어와 있는 거예요.

이렇게 세상 만물을 향해 "네 안에 든 걸 내놔, 쓸 수 있게 대기해"라고 다그치는 눈 전체를 하이데거는 몰아세움이라고 불렀어요. 독일어로는 게슈텔이에요. 한 사람의 나쁜 마음이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그 안에서 세상을 보게 되는 거대한 틀 같은 거죠.
하이데거가 진짜 위험하다고 본 건 환경 오염 그 자체가 아니었어요. 이 눈이 너무 강해져서, 세상을 보는 다른 방식이 아예 사라지는 것이었어요. 강을 '발전소'로만 볼 줄 알지, 그냥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느끼는 법을 잊는 것. 그게 정말 위험한 일이라고요.

그렇다고 기계를 다 부수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하이데거는 시인 횔덜린의 한 구절을 즐겨 빌렸어요.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의 힘도 함께 자란다." 몰아세움이 위험인 건 맞지만, 바로 그 안에서 우리가 다른 눈을 되찾을 실마리도 자란다는 뜻이에요.
그 실마리로 그가 든 건 예술이었어요. 화가가 강을 그릴 때, 강은 짜낼 자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만히 모습을 드러내요. 기술의 눈만이 유일한 눈은 아니라는 걸, 예술은 조용히 보여 주는 거죠. 그래서 하이데거는 답을 던져 주기보다, 우리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한 번쯤 멈춰 묻기를 바랐어요.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본질은 기계가 아니라, 세상을 '언제든 뽑아 쓸 재료'로 다그쳐 세우는 눈, 곧 몰아세움이었어요. 같은 강도 물레방아의 눈으로 보면 흐름이고, 댐의 눈으로 보면 발전소가 돼요. 진짜 위험은 이 한 가지 눈만 남아 다른 보기를 잊는 데 있고, 예술처럼 세상이 스스로 드러나게 두는 눈을 되살릴 때 길이 열린다고 그는 봤어요. 다음에 강이나 숲을 볼 때, 나는 그것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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