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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휴대폰을 켜고, 남들이 다 보는 영상을 보고, 다들 입는 옷을 입고, 다들 가는 길로 학교나 회사에 가요. 점심엔 친구들이 시키는 메뉴를 따라 시키고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하루의 꽤 많은 부분을 "남들이 그러니까" 하면서 보내요. 그게 편하거든요. 따라 하면 튈 일도 없고, 고민할 일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한참을 살다 보면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진짜 내가 원했던 건 뭐였지?" 백 년쯤 전 독일에 살던 한 철학자가 바로 이 물음을 평생 붙들고 늘어졌어요.

그 철학자의 이름은 마르틴 하이데거예요. 1889년부터 1976년까지 살았고, 1927년에 펴낸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졌어요. 하이데거가 보기에 사람은 좀 특별한 동물이에요. 돌멩이는 자기가 돌멩이인 걸 고민하지 않고, 강아지도 "나는 왜 사는가"를 묻지 않잖아요. 그저 있을 뿐이죠. 그런데 사람만은 "산다는 게 대체 뭐지? 나는 뭐지?" 하고 자기 존재를 궁금해해요. 하이데거는 이렇게 자기 존재를 신경 쓰며 사는 사람을 '현존재'라고 불렀어요. 낯선 말 같지만 어렵지 않아요. '지금 여기 살아 있으면서, 살아 있다는 걸 스스로 의식하는 나' 정도의 뜻이에요. 하이데거는 바로 이 현존재를 들여다보면 존재가 무엇인지 답이 보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존재인 우리는 정작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존재를 까맣게 잊은 채 살아요. 하이데거는 이런 상태를 '비본래성'이라고 했어요. 쉽게 말하면 "남들 사는 대로 사는 나"예요. 그는 이 "남들"에게 이름을 붙였는데, 우리말로는 흔히 '세인'이라고 옮겨요. 딱 정해진 누구를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단톡방의 분위기, 줄줄이 달린 댓글들, "보통 다 이렇게 하지"라는 정체 모를 목소리 같은 거예요. 세인은 참 편해요. 남들 따라 하면 틀려도 내 탓이 아니고, 책임질 일도 없거든요. 식당에서 "저도 그냥 똑같은 걸로요" 하는 그 순간이 딱 그래요. 머리도 안 아프고 마음도 편하죠. 문제는 그렇게만 살면 정작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가 영영 흐릿한 채로 남는다는 거예요.

반대로 '본래성'은 "이건 정말 내가 고른 내 삶이야" 하고 사는 거예요. 남들이 다 한다고 휩쓸려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스스로 고르고 그 결과까지 내가 떠안는 거죠. 다행히 하이데거는 이걸 거창한 영웅 이야기로 만들지 않았어요. 친구들이 다 가는 학과 대신 내가 정말 해 보고 싶은 걸 고르는 일, 다들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해도 내가 옳다고 믿는 걸 끝까지 말하는 일처럼, 작고 평범한 순간들이에요. 멋있어 보이는지, 남들이 알아주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선택이 '남들'이 아니라 '나'에게서 나왔다는 점, 그거 하나가 본래성과 비본래성을 가르는 갈림길이에요.

그럼 비본래성에서 본래성으로는 어떻게 넘어갈까요? 하이데거는 좀 뜻밖의 답을 내놓아요. 바로 '죽음'을 떠올리는 일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고, 그건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어요. 내 죽음만은 오직 나만의 것이죠. 이걸 무섭다고 외면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면, "그럼 남은 시간을 끝까지 남들 따라서만 보낼 거야?"라는 물음이 슬며시 올라와요. 하이데거는 이렇게 끝이 있음을 알고 사는 사람을 '죽음을 향한 존재'라고 불렀어요.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거예요. 방학이 끝없이 남은 것 같으면 그냥 빈둥대다가, 며칠 안 남은 걸 알면 갑자기 하고 싶던 일이 또렷해지는 것처럼요.

하이데거는 우리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살 수 있다고 봤어요. 하나는 '남들이 그러니까' 하며 사는 비본래성이고, 다른 하나는 '이건 내가 고른 내 삶'이라며 사는 본래성이에요. 둘 중 하나가 나쁜 사람이고 하나가 좋은 사람인 건 아니에요. 누구나 대개는 남들을 따라 살고, 가끔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에야 진짜 내 삶으로 돌아오니까요. 다만 끝이 있다는 걸 잊지 않을 때, 오늘 하루가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것. 다음에 "저도 그냥 똑같은 걸로요"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 할 때, 잠깐 멈춰서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걸까?" 하고 한 번 물어보는 것. 하이데거가 백 년 전부터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건, 어쩌면 그 작은 멈춤 하나였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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