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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물속에서 평생을 산 물고기한테 "물이 뭐야?"라고 물으면 아마 멍한 표정을 지을 거예요. 너무 당연하게 온몸을 감싸고 있어서, 오히려 한 번도 따로 떼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사람도 비슷해요. 우리는 늘 어떤 세상 속에 푹 잠겨서 살아가는데, 그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해서 "내가 세상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잘 안 보여요.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평생 붙잡고 늘어진 질문이 바로 이거예요. 그는 1889년부터 1976년까지 살면서, 우리가 너무 당연해서 그냥 지나치던 이 사실을 다시 천천히 들여다보려고 했어요.

하이데거가 만든 표현 중에 '세계-내-존재'라는 게 있어요. 말이 좀 딱딱하죠. 쉽게 풀면 "나는 언제나 세상 안에 들어가 있는 존재다"라는 뜻이에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전까지 많은 철학자들은 사람을 이렇게 봤어요. 여기 '생각하는 나'가 있고, 저 바깥에 '세상'이라는 물건들이 따로 떨어져 있다고요. 마치 유리창 안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구경하는 사람처럼요. 하이데거는 고개를 저었어요. 우리는 창문 안에서 세상을 구경하는 구경꾼이 아니라, 이미 문을 열고 나가 세상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하며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요. 나와 세상은 처음부터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못을 박으려고 망치를 들 때, 우리는 망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건 쇠로 됐고 무게는 얼마고 손잡이는 나무고"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지 않아요. 그냥 손이 알아서 망치를 쥐고 쾅쾅 못을 박죠. 그 순간 망치는 거의 손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정작 망치 자체는 머릿속에서 스르륵 사라져요. 우리 관심은 온통 '못을 잘 박는 일'에 가 있으니까요. 하이데거는 이렇게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사물의 모습을 가장 본래적인 모습이라고 봤어요. 우리는 세상을 먼저 멀찍이 '구경'하는 게 아니라, 먼저 손으로 '쓰고 다루면서' 만난다는 거예요. 연필도, 숟가락도, 자전거도 다 그래요. 잘 쓰일 때는 도구가 조용히 뒤로 숨어요.

그리고 망치 하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뒤로 보이지 않는 그물이 줄줄이 딸려 와요. 망치는 못을 박기 위해 있고, 못은 나무판을 잇기 위해 있고, 나무판은 벽을 세우기 위해, 벽은 비바람을 피할 집을 위해 있어요. 망치 하나에 못과 나무와 집과 '비를 피하고 싶은 사람'까지 줄줄이 연결되어 있는 거죠. 하이데거가 말한 '세계'는 이렇게 사물들이 서로 "이건 저걸 위해"라고 가리키며 엮여 있는 거대한 의미의 그물이에요. 우리는 그 그물 한가운데에 서서, 그 연결들을 자연스럽게 알아듣고 살아가요. 그게 바로 세상 안에 들어가 있다는 말의 진짜 모습이에요.

그런데 망치 머리가 툭 부러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제야 우리는 손을 멈추고 망치를 빤히 쳐다봐요. "어, 이게 왜 이래?" 하면서요. 바로 그 순간 망치는 손의 일부가 아니라 '눈앞에 놓인 물건'으로 변해요. 재미있는 건, 사물을 차갑게 관찰하는 이 태도가 사실은 두 번째 순서라는 점이에요. 무언가 어긋나고 고장 나야 비로소 우리는 한 발 물러나 대상을 따로 떼어 '관찰'하게 돼요. 우리가 평소에 세상과 얼마나 딱 붙어서 살고 있었는지는, 오히려 그 연결이 뚝 끊길 때 드러나는 거죠. 와이파이가 끊겨야 와이파이가 있었다는 걸 느끼는 것처럼요.

하이데거는 사람을 가리킬 때 '현존재'라는 말을 써요. '지금 여기 있음'이라는 뜻이에요. 사람이 돌멩이나 망치 같은 다른 사물과 다른 점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끝난다는 것을 스스로 묻는다는 데 있어요. 돌멩이는 "나는 왜 있지?"라고 묻지 않지만, 사람은 물어요. 그래서 사람은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존재를 신경 쓰면서 있는 존재예요. 하이데거는 이런 생각을 1927년에 펴낸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에 담았어요. 제목 그대로, '있다는 게 도대체 뭘까'라는 가장 오래되고 단순한 질문을 시간이라는 열쇠로 다시 열어 보려 한 책이에요.

이 생각이 주는 선물은, 나와 세상을 둘로 쪼개는 오래된 습관을 멈추게 해 준다는 데 있어요. 우리는 머릿속에 갇혀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는 외톨이 구경꾼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걱정하고 도구를 쓰며 의미를 만들어 가는 존재예요. 친구와 떡볶이를 먹고, 버스를 기다리고, 숙제를 미루는 그 모든 평범한 순간이 사실은 '세상 안에 들어가 있음' 그 자체예요. 거창하고 특별한 곳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요. 철학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손에 쥔 망치 안에 있다는 걸 보여 준 셈이죠.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는 한마디로 "우리는 세상을 멀리서 구경하는 게 아니라, 이미 세상 한복판에서 무언가를 하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망치를 쓸 때는 망치를 잊고, 망치가 부러져야 비로소 망치를 보게 되듯이, 우리는 평소 세상과 딱 붙어 있어서 그 붙어 있음을 잊고 살아요. 물고기가 물을 잊고 헤엄치듯이요. 다음에 무언가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면, 바로 그 순간 당신은 가장 자연스럽게 세상 안에 들어가 있던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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