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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늘 하루도 정말 바빴어요." 우리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요. 그런데 그 '바쁨'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아주 다른 일들이 한 단어 안에 뒤섞여 있어요. 아침에 밥을 차리고 설거지한 것도 바쁜 일이고, 주말에 뚝딱뚝딱 책상을 하나 만든 것도 바쁜 일이고, 친구들과 모여서 어디로 놀러 갈지 정하고 살짝 다툰 것도 바쁜 일이죠. 다 똑같이 '바빴다'로 묶이지만, 정말 같은 종류의 일일까요. 한나 아렌트라는 사람은 바로 이 점을 파고들었어요. 그는 1906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던 정치철학자인데, 독일에서 태어났다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이에요. 아렌트는 사람이 몸을 움직여 살아가는 모든 일, 그러니까 '활동적 삶'을 노동과 작업과 행위, 이렇게 딱 세 칸으로 나눠서 정리했어요. 한번 그 세 칸을 같이 열어 볼게요.

첫 번째 칸은 노동이에요. 노동이라고 하면 그냥 '힘든 일 전부'를 떠올리기 쉬운데, 아렌트가 말한 노동은 훨씬 콕 집은 뜻이에요. 살아 있기 위해 끝없이 되풀이해야 하는 일을 말해요. 생각해 보면 밥은 지어도 먹으면 없어지고, 배가 고파지면 또 지어야 해요. 청소를 깨끗이 해도 며칠이면 다시 먼지가 쌓이고, 빨래도 입으면 또 빨아야 하죠. 아무리 부지런히 해도 "자, 이제 다 끝났다" 하고 뒤에 남는 게 없어요. 몸이 살아 있는 한 평생 멈출 수 없는,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 같은 일이에요. 농부가 해마다 다시 씨를 뿌리는 것도, 우리가 날마다 밥을 차리는 것도 모두 이 노동 칸에 들어가요. 끝이 없다는 게 노동의 핵심이에요.

두 번째 칸은 작업이에요. 노동이 먹으면 사라지는 일이라면, 작업은 끝나고 나서 단단한 물건이 남는 일이에요. 목수가 책상을 하나 만들면, 그 책상은 만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을 거뜬히 써요. 집을 짓고, 책을 쓰고, 그릇을 빚고, 의자를 짜는 일이 다 작업이에요. 작업에는 노동과 달리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어요. 머릿속으로 모양을 그리고,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다 만들면 "완성" 하고 손을 탁탁 털 수 있죠. 이렇게 사람이 만들어 낸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상'이 돼요. 책상도 건물도 책도 하나 없는 텅 빈 벌판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 휑한 느낌과 우리 방을 비교해 보면, 작업이 무엇을 남기는 일인지 단번에 와닿을 거예요.

세 번째 칸이 아렌트가 가장 귀하게 여긴 행위예요. 행위는 물건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에요. 반 친구들과 빙 둘러앉아 "이번 소풍은 어디로 갈까" 의논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말로 주고받고, 어제까지 없던 약속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 바로 이게 행위예요. 행위는 혼자서는 도무지 할 수가 없어요. 꼭 다른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하고, 내가 입을 열어 말하고 움직이는 그 순간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는 게 남들 앞에 드러나요. 행위의 가장 신기한 점은, 전에 없던 일을 세상에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아렌트는 아기가 태어나는 것 자체가 세상에 새로운 시작이 하나 들어오는 일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행위야말로 가장 사람다운 일이라고 했죠. 노동과 작업과 행위, 이 세 가지 이야기는 1958년에 나온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 차곡차곡 담겨 있어요.

여기까지 들으면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거지?" 싶을 수 있어요. 아렌트가 굳이 셋으로 나눈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는 사람들이 점점 노동만 하며 사는 쪽으로 쏠리는 걸 걱정했어요. 먹고사는 일에만 온통 매달리느라, 남들과 말을 섞고 함께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행위를 잊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렌트는 바로 그런 자리에서 무서운 일이 자란다고 봤어요. 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졌는데, 1963년에 쓴 책에서 나온 표현이에요. 끔찍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 알고 보니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멈춰 버린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예요. 시키는 일만 묵묵히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건 아무래도 아니지 않나" 하고 말하는 행위를 그만둘 때, 그 평범함이 어마어마한 잘못에 휩쓸릴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 행위가 중요하다는 아렌트의 말은, 결국 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에요.

아렌트는 우리가 뭉뚱그려 '바쁨'이라 부르는 활동적 삶을 세 칸으로 나눴어요. 살기 위해 끝없이 되풀이하는 노동, 세상에 남을 물건을 만드는 작업, 사람들 사이에서 말하고 새로 시작하는 행위. 세 가지 다 우리 삶에 필요하지만, 아렌트가 가장 아낀 건 행위였어요. 다른 사람과 부딪치며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 그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고 보았으니까요. 다음에 누군가 "오늘 참 바빴다"고 말할 때, 그 바쁨 안에 노동과 작업과 행위 중 무엇이 섞여 있었는지 슬쩍 나눠 보면 어떨까요. 같은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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