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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교에서 누가 복도에 쓰레기를 툭 버리고 가요. 그걸 보고도 "나 하나 줍는다고 뭐가 달라져" 하면서 그냥 지나친 적, 다들 한 번쯤 있을 거예요. 어른이 되어도 비슷해요. 내 한 표, 내 작은 목소리 하나가 이 큰 세상에서 무슨 힘이 있겠냐고 쉽게 생각하죠.
그런데 70년쯤 전에, 정반대를 말한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새로 태어난다는 평범한 사실, 바로 그 안에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 숨어 있다고요. 그 사람이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예요. 오늘은 그가 말한 '탄생성과 시작'이라는 생각을 같이 풀어 볼게요.

한나 아렌트는 1906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975년에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정치철학자예요.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가 권력을 잡자 붙잡힐 위험에 몰렸고, 결국 1941년에 미국으로 도망쳤어요.
그가 살던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냥 숫자처럼 지워지던 때였어요. 수많은 사람이 줄지어 끌려갔고, 그 끔찍한 일을 시킨 사람들조차 무슨 대단한 악당이 아니라 그저 "위에서 시키니까 했다"는 평범한 공무원이었어요. 아렌트는 이걸 보고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남겼죠.
그래서 그의 평생 질문은 이거였어요.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에 가담하고, 그런 세상에서도 희망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그 희망의 자리를 아렌트는 뜻밖의 곳에서 찾았어요. 바로 '태어남'이에요.

'탄생성'이라는 어려운 말을, 먼저 장면으로 바꿔 볼게요.
갓 태어난 아기를 떠올려 보세요. 그 아기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완전히 처음 있는 존재예요. 엄마 아빠를 닮았어도 엄마 아빠와 같은 사람은 아니에요.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커서 무슨 일을 벌일지 누구도 미리 알 수 없어요.
아렌트는 이걸 '탄생성'이라고 불렀어요. 사람은 태어날 때마다, 예전엔 없던 새로운 누군가가 세상에 한 명 더해진다는 뜻이에요.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내는 물건과는 달라요. 가게 문이 열릴 때마다 매번 처음 보는 손님이 들어오는 것에 가깝죠. 그 손님이 무엇을 살지,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문이 열리기 전엔 아무도 몰라요.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요. 아렌트가 보기에 태어남이 특별한 이유는, 새 사람이 곧 '새로운 시작' 그 자체이기 때문이에요.
가만 보면 우리는 살면서 늘 뭔가를 처음 시작해요. 한 번도 안 해 본 말을 용기 내 꺼내고, 아무도 안 하던 일을 벌이고, 어제와 다른 선택을 하죠. 그때마다 우리는 작게 다시 태어나는 셈이에요. 아렌트는 사람에게 이렇게 '전에 없던 일을 새로 시작하는 힘'이 있고, 그 힘의 뿌리가 바로 우리가 태어난 존재라는 데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그에게 자유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었어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새 일을 처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 그게 자유였죠. 복도의 쓰레기를 처음 줍기 시작하는 한 사람, 모두가 가만있을 때 혼자 손을 드는 한 사람처럼요. 작아 보여도, 거기서 전에 없던 이야기가 하나 시작되는 거예요.

아렌트가 살던 시대의 많은 철학자들은 '사람은 결국 죽는 존재'라는 데서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아렌트를 가르친 스승 가운데 한 명도 그랬고요. 죽음을 똑바로 보는 데서 삶의 의미가 나온다고 본 거죠.
그런데 아렌트는 출발점을 바꿨어요. '우리는 죽는다'가 아니라 '우리는 태어난다'에서 시작하자고요.
이유가 있어요. 전체주의는 사람들을 똑같이 찍어내고, '너 하나쯤 없어져도 세상은 똑같이 돌아간다'고 믿게 만들어요. 그 차가운 믿음에 맞서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새 시작이라는 사실이 꼭 필요했던 거예요. 세상이 아무리 절망스러워 보여도 아기는 계속 태어나고, 그때마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새 이야기가 또 하나 열리니까요. 아렌트에게 그것은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었어요.

아렌트의 '탄생성과 시작'은 이렇게 한 문장으로 묶을 수 있어요. 사람은 태어나는 존재이고, 태어났기 때문에 누구나 전에 없던 일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말에 아렌트라면 이렇게 답할 거예요. 당신은 이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시작이라서, 바로 그 한 사람이 늘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고요. 다음에 길에서 작은 일 하나를 먼저 시작하고 싶어질 때, 그 마음이 아렌트가 말한 가장 큰 힘이라는 걸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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