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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버스를 놓쳐서 비를 쫄딱 맞은 두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온종일 짜증을 내고, 다른 한 사람은 어깨를 으쓱하고 그냥 걸어가요. 같은 비, 같은 버스인데 마음은 완전히 달라요. 왜 그럴까요? 옛날 옛적에 이 차이를 평생 파고든 사람이 있었어요. 이름은 에픽테토스. 그는 비가 우리를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말했어요. 우리를 흔드는 건 비 자체가 아니라, 비를 두고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이라는 거예요.

에픽테토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2천 년 전, 서기 55년쯤에 태어났어요. 놀라운 건 그가 노예로 살았다는 점이에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다리를 다쳐서 평생 한쪽 다리를 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몸은 남의 것이나 다름없었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 몸은 묶을 수 있어도, 내 마음까지 묶을 수는 없다." 나중에 자유를 얻은 뒤 그는 철학 선생님이 되었고, 가장 자유롭지 못한 자리에서 진짜 자유가 뭔지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이런 생각의 묶음을 스토아 철학이라고 불러요.

재미있게도 에픽테토스는 책을 한 권도 직접 쓰지 않았어요. 그가 말로 가르친 내용을 아리아노스라는 제자가 받아 적어서, 그중 가장 중요한 알맹이만 작게 추린 게 바로 엥케이리디온이에요. 엥케이리디온은 옛 그리스 말로 '손에 드는 것'이라는 뜻이에요. 칼을 쓰는 군인이 늘 허리에 차고 다니는 단검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 바로 꺼내 보라고 만든 작은 손수첩인 셈이죠. 두께도 얇아서, 요즘으로 치면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짧은 안내문 한 장 같아요.

이 수첩의 첫 장에 가장 중요한 말이 나와요. 세상일을 두 칸으로 나누라는 거예요. 한 칸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 다른 칸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 생각, 내 노력, 내 태도 같은 거예요. 반대로 날씨, 다른 사람의 기분, 시험 점수, 내 키 같은 건 아무리 애를 써도 내 맘대로 안 되죠. 에픽테토스는 말해요. 내 칸의 일에는 온 힘을 쏟되, 내 칸이 아닌 일에는 마음을 걸지 말라고요. 마치 가방을 쌀 때, 가져갈 수 있는 짐과 두고 가야 할 짐을 미리 갈라 놓는 것과 비슷해요.

친구가 인사를 안 받아 줬다고 해 볼게요. 우리는 보통 '쟤가 날 싫어하나 봐'라고 곧장 생각하고 하루를 망쳐요. 그런데 친구가 인사를 받느냐 마느냐는 내 칸이 아니에요. 친구의 마음이니까요. 내 칸은 단 하나,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예요. '바빴나 보다' 하고 넘기면 마음이 가벼워져요. 일은 그대로인데 생각을 바꾸니 괴로움이 줄어드는 거예요. 시험 점수도 마찬가지예요. 점수 자체는 이미 정해져 손댈 수 없지만, 다음에 어떻게 공부할지는 온전히 내 칸이에요. 그래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가만히 참으라는 말이 아니라, 힘을 쓸 데에만 똑바로 쓰라는 말이에요.

에픽테토스는 노예로 살면서도,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한 가지가 마음이라는 걸 알아챘어요. 그가 남긴 손수첩 엥케이리디온은 딱 한 가지 연습을 권해요. 어떤 일을 만나면 먼저 '이게 내 칸일까, 아닐까'를 갈라 보는 거예요. 내 칸이 아니면 힘을 빼고, 내 칸이면 거기에 마음을 모으는 거죠. 비가 오는 건 내 칸이 아니지만, 그 비를 어떻게 맞을지는 늘 내 칸이에요. 오늘 짜증 나는 일이 생기면 이 두 칸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게 2천 년 전 한 사람이 작은 수첩에 적어 둔, 마음을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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