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요. 버스를 놓친 두 사람이 정류장에 서 있어요. 한 사람은 "오늘 진짜 다 망했다" 하며 인상을 구기고, 옆 사람은 "오랜만에 비 냄새 좋네" 하며 어깨를 펴요. 같은 비, 같은 정류장, 같은 버스인데 한 명은 하루를 통째로 망치고 한 명은 멀쩡해요. 비가 두 사람을 다르게 대한 게 아니에요. 두 사람이 비를 다르게 받아들인 거예요. 약 2000년 전, 노예로 태어난 한 철학자가 바로 이 차이를 평생 파고들었어요. 이름은 에픽테토스예요.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머릿속에는 그림이 한 장 저절로 떠올라요. 비가 오면 '젖겠다', 상사가 부르면 '혼나겠다' 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마음에 먼저 뜨는 첫 장면을 에픽테토스는 표상이라고 불렀어요. 어려운 말 같지만, 그냥 '마음에 자동으로 떠오른 그림'이에요. 카메라가 셔터를 누르면 사진이 찍히듯, 사건이 오면 표상은 그냥 찍혀요. 여기까지는 누구나 똑같고, 막을 수도 없어요. 버스를 놓친 두 사람 모두 '버스 갔다'는 그림은 똑같이 떠올랐을 거예요.

그런데 그림이 떠오른 다음이 갈려요. 한 사람은 그 그림에 '망했다, 최악이다'라는 말을 붙이고, 다른 사람은 '뭐 다음 버스 타지'라는 말을 붙여요. 이렇게 떠오른 그림에 우리가 보태는 한 마디, '이건 좋다 나쁘다'를 정하는 그 순간을 판단이라고 해요. 에픽테토스는 여기에 자유가 있다고 봤어요. 버스가 가는 건 내가 못 막아요. 하지만 그걸 '재앙'이라고 부를지 '그냥 일'이라고 부를지는 내가 정할 수 있어요. 괴로움은 비에서 오는 게 아니라, 비에 붙인 그 한 마디에서 와요.

에픽테토스는 서기 50년 무렵부터 135년 무렵까지 살았고, 진짜로 노예로 출발했어요. 가진 것도, 몸의 자유도 없었어요. 다리를 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요. 바깥세상은 그가 어쩔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반대로 물었어요.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빼앗기지 않는 게 뭘까?" 답은 하나, 떠오른 그림에 어떤 판단을 붙일지 정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어요.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생각이다." 몸은 묶여도 이 한 가지는 누구도 손댈 수 없으니, 그게 진짜 자유라는 거예요.

이건 옛날이야기로 끝나지 않아요. 누가 답장을 안 하면 '나를 무시하네'라는 그림이 자동으로 떠올라요. 그게 표상이에요. 여기서 잠깐 멈춰 '이건 떠오른 그림일 뿐, 사실은 아직 몰라'라고 한 박자 두는 거예요. 그러면 '바쁜가 보다'라는 다른 판단을 고를 틈이 생겨요. 사건과 나 사이에 아주 작은 빈칸을 만드는 연습이에요. 그 빈칸이 클수록, 같은 일에도 덜 휘둘려요.

무슨 일이 생기면 마음에는 그림 한 장이 저절로 떠올라요. 이게 표상이고, 막을 수 없어요. 하지만 그 그림에 '좋다 나쁘다'를 붙이는 판단은 내 몫이에요. 노예로 태어난 에픽테토스가 끝까지 붙든 자유가 바로 이 판단의 자리였어요. 그러니 다음에 무언가 나를 괴롭힌다면, 그게 사건 자체인지 아니면 사건에 붙인 내 한 마디인지 한 번만 떼어 보세요. 그 작은 빈칸에서, 같은 비를 맞고도 웃는 사람의 여유가 시작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3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