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가 시험을 망치고 이렇게 말하는 걸 본 적 있을 거예요. "나는 원래 수학을 못하는 애야." 약속을 어긴 사람이 "내 성격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하기도 하고요. 듣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들어요. 정말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안 한 걸 못한다고 말하는 걸까요? 프랑스 철학자 한 사람은 바로 이 순간을 평생 들여다봤어요. 그리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죠. '자기기만', 다른 말로 '나쁜 믿음'이에요.

거짓말은 보통 남을 속이는 거예요. 내가 진실을 알면서 상대에게 가짜를 말하죠. 그런데 자기기만은 좀 이상해요. 속이는 사람도 나고, 속는 사람도 나거든요. 한 손으로는 진실을 쥐고 있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그걸 모른 척 덮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게임을 두 시간만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네 시간을 하고는 이렇게 말해요. "게임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이 그냥 흘러갔어." 마치 시간이 자기 마음대로 흐른 것처럼요. 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 '계속할까, 그만할까'를 자기가 골랐어요.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을요. 그 '내가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 보이게 덮어 버리는 것, 그게 자기기만이에요. 거짓말처럼 들통나지도 않아요. 나 혼자 조용히 나를 속이는 거니까요.

이 이야기를 한 사람은 장폴 사르트르예요. 1905년부터 1980년까지 산 프랑스 사람이고, '실존주의'라는 생각을 널리 퍼뜨린 철학자죠.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어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어렵게 들리지만 장면으로 보면 쉬워요. 가위를 만들 때는 '무엇을 자르는 물건'이라는 쓸모를 먼저 정하고, 그 쓸모에 맞게 모양을 만들어요. 쓸모가 먼저고 물건은 나중이죠. 사르트르는 이 쓸모를 '본질'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사람은 반대래요.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라'는 설계도 없이 그냥 세상에 먼저 툭 던져져요. 사르트르는 이렇게 일단 있게 된 것을 '실존'이라고 했고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살아가면서 내 선택으로 하나하나 채워 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사르트르가 보기엔 절반은 핑계예요. 우리한테는 태어날 때 정해진 '원래'가 없거든요.

사르트르가 든 유명한 예가 하나 있어요.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을 떠올려 봐요. 그 사람은 걸음도 딱딱 절도 있게 걷고, 말투도 또렷하고, 쟁반도 조금 과하다 싶게 정확히 들어요. 마치 '종업원이라는 역할' 그 자체가 되려는 것처럼요.
왜 그럴까요? 역할 뒤에 숨으면 마음이 편하거든요. '나는 종업원이니까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해'라고 하면, 매 순간 내가 직접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어요. 하지만 진실은, 그 사람은 내일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지금 손님에게 다르게 대할 수도 있어요. 역할은 입은 옷일 뿐이고, 그 옷을 입기로 고른 건 자기 자신이에요. 그걸 잊고 '옷이 곧 나'라고 믿어 버리는 것, 그게 또 다른 자기기만이에요. 학교에서 "나는 원래 조용한 애", "나는 원래 반장 스타일"이라고 자기를 가둘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요.

사르트르는 사람이 자유롭다는 걸 아주 무겁게 봤어요. 너무 자유로워서, 오히려 그게 부담스럽다고요.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져요. 책임이 나한테서 스르르 빠져나가니까요. 자기기만은 바로 이 자유의 무게가 무서워서 도망치는 방법이에요.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고 믿으면, 미안할 일도 고칠 일도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사람을 두고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 표현했어요. 자유를 선물 받은 게 아니라 선고받았다고요. 도망칠 수 없다는 뜻이죠. 내가 한 일도, 안 한 일도, '안 하기로 고른 것'까지 모두 내 몫이에요. 무섭게 들리지만 뒤집으면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해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사람이 아니라면, 지금부터 얼마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자기기만은 남이 아니라 나를 속이는 일이에요. 사실은 내가 매 순간 고르고 있으면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원래 이래"라고 말하며 그 선택을 안 보이게 덮는 거죠. 사르트르는 사람에게 정해진 설계도가 없고(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그래서 우리는 늘 자유로운 만큼 책임도 진다고 봤어요. 다음에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려 할 때, 정말 어쩔 수 없었는지 딱 한 번만 되물어 보세요. 그 순간 여러분은 사르트르의 질문을 직접 만나는 거예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3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