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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랍 속 가위를 한번 떠올려 볼까요. 이 가위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할 일이 정해져 있었어요. 누군가 '종이를 자르는 물건이 필요해'라고 생각했고, 그 쓸모에 맞춰 모양을 그리고 쇠를 깎았지요. 그러니까 가위는 '무엇을 위한 물건인지'가 먼저 정해진 다음에 실제로 만들어진 거예요.
컵도, 망치도, 연필도 다 그래요. 쓸모가 먼저 있고 물건은 나중에 와요. 이렇게 '먼저 정해진 쓸모'를 어려운 말로 본질이라고 불러요. 그리고 그 물건이 실제로 여기 존재하는 일을 실존이라고 해요. 도구의 세계에서는 본질이 늘 실존보다 앞서요.

프랑스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는 1905년부터 1980년까지 살았던 사람인데,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을 던져요. 사람도 가위처럼 쓸모가 먼저 정해진 채 태어날까요?
사르트르는 아니라고 해요.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너는 이걸 하려고 태어났어'라고 적힌 설계도가 없어요. 먼저 그냥 세상에 툭 던져져 존재하고, 그다음에 살아가면서 스스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만들어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선언했어요. 존재가 먼저고, 무엇이 될지는 나중이라는 뜻이지요. 사람은 가위와 정반대 순서로 산다는 이야기예요.

정해진 게 없다니, 자유로워서 좋겠다 싶지요? 그런데 사르트르는 묘한 말을 해요. 사람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고요. 선고라는 건 재판에서 벌을 내릴 때 쓰는 말이에요. 자유가 마치 피할 수 없는 벌처럼 주어졌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요. 정해진 길이 없으니 매 순간 내가 직접 골라야 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날지 더 잘지, 친구에게 사과할지 말지, 이런 작은 일부터 다 내 선택이에요.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핑계 대고 싶어도, 사르트르는 그것조차 내가 그렇게 하기로 고른 거라고 봐요. 도망칠 곳이 없는 자유, 그래서 무거운 자유예요.

자유가 무거운 진짜 이유는 책임 때문이에요. 내가 고른 일의 결과를 떠넘길 사람이 없으니까요. 가위는 종이를 잘못 잘라도 책임이 없어요. 자기가 고른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사람은 스스로 골랐기 때문에 그 결과를 끌어안아야 해요.
사르트르는 한발 더 나가요. 내가 무언가를 고를 때, 나는 '사람이라면 이래도 된다'는 본보기를 세상에 내놓는 셈이라고요. 줄을 서다가 슬쩍 새치기를 하면, 그건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야'라고 모두에게 보여 주는 일이 돼요. 그래서 내 선택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에 대한 작은 투표 같은 거예요.

그럼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뭘 하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앙가주망이라는 말이 나와요. 프랑스어인데, 쉽게 말하면 '발을 담근다, 끼어든다'는 뜻이에요. 물가에서 구경만 하지 말고 물속으로 들어오라는 거지요.
머릿속으로 '세상이 이래야 하는데' 하고 생각만 하는 건 앙가주망이 아니에요. 불공평한 일을 보면 목소리를 내고, 옳다고 믿는 쪽에 직접 한 표를 던지고, 글을 쓰고 행동하는 것, 그렇게 세상일에 자기 몸을 던져 끼어드는 것이 앙가주망이에요. 사르트르 자신도 책상에만 앉아 있지 않고 사회 문제에 자주 목소리를 냈어요. 자유롭다는 건 결국, 어떤 세상을 만들지에 내가 끼어들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가위는 쓸모가 먼저 정해진 다음에 만들어지지만, 사람은 먼저 존재하고 나서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 가요. 이것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생각이에요. 정해진 길이 없으니 사람은 자유롭지만, 그 자유는 핑계 댈 곳 없는 무거운 자유여서 '선고받았다'고 표현했어요. 내가 고른 일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고, 그 책임은 나 혼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본보기로까지 번져요. 그래서 사르트르는 구경만 하지 말고 세상에 발을 담그라고, 앙가주망을 말했어요. 자유와 책임과 참여는 따로 떨어진 게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한 묶음이라는 점, 이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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