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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상상해 봐요. 평범한 아침이었는데, 도시 전체가 갑자기 봉쇄돼서 아무도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됐어요. 다른 동네에 사는 가족도 만날 수 없고, 거리에는 쥐가 죽어 나가고, 사람들이 하나둘 병으로 쓰러져요. 약도 없고, 언제 끝날지도 몰라요. 무섭죠?
이건 알베르 카뮈라는 프랑스 작가가 1947년에 펴낸 소설 『페스트』의 이야기예요. 무대가 되는 도시는 북아프리카 알제리에 있는 항구 도시 오랑이고요. 페스트는 14세기에 유럽 인구의 약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간 무서운 전염병이에요. 카뮈는 이 병이 한 도시를 덮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었어요.

알베르 카뮈는 1913년부터 1960년까지 살았어요. 프랑스 본토가 아니라 알제리에서 태어났고, 마흔여섯 살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그 3년 전인 1957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당시 가장 주목받던 작가 중 한 명이었어요.
그는 부유하게 자라지 않았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와 가난하게 컸죠.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는 늘 평범한 사람들, 말없이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요.

카뮈가 던진 질문은 이거였어요. 세상은 우리한테 아무 의미도, 답도 주지 않는데, 그래도 우리는 왜 살아야 할까?
이걸 그는 '부조리'라고 불렀어요. 부조리는 어려운 말 같지만, 이런 느낌이에요. 열심히 공부했는데 시험에 엉뚱한 문제가 나온 것 같은 황당함, 아무리 애써도 답이 안 나오는 막막함이요. 세상은 원래 우리 기대대로 굴러가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카뮈는 1942년에 쓴 『시지프 신화』라는 책에서 이걸 그리스 신화로 설명했어요. 시지프는 신들에게 벌을 받아서,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했어요. 그런데 정상에 닿으면 바위가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져요. 그러면 또 내려가서 밀어 올리고, 또 떨어지고요. 끝이 없어요.

보통은 이 이야기를 절망으로 읽어요. 아무 소용없는 일을 영원히 반복하다니, 끔찍하잖아요. 그런데 카뮈는 정반대로 봤어요. 시지프가 굴러떨어진 바위를 향해 다시 걸어 내려가는 그 순간, 그는 자기 운명을 똑바로 마주하고 받아들인 거라고요.
이게 카뮈가 말한 '반항'이에요. 싸워서 세상을 이기는 게 아니라, 의미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기 몫을 계속하는 마음이요. 카뮈는 그래서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그 책을 끝맺어요.

여기서 『페스트』가 한 걸음 더 나아가요. 『시지프 신화』의 바위가 혼자 미는 것이었다면, 『페스트』의 바위는 여럿이 함께 미는 거예요.
소설 속 주인공인 의사 리외는 전염병 앞에서 영웅처럼 굴지 않아요. 도시를 단번에 구할 방법 같은 건 없거든요. 그는 그냥 매일 환자를 찾아가 치료하고, 지치면 잠깐 쉬고, 다시 나가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어도요.
신기한 건, 그렇게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는 거예요. 의사, 공무원, 신문기자, 평범한 이웃이 함께 방역대를 꾸리고 서로를 도와요. 카뮈는 이걸 '연대'라고 불렀어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 고통은 우리 모두의 일이니까 나도 끼겠다고 나서는 평범한 마음이요.

많은 사람이 『페스트』 속 전염병을, 카뮈가 살던 시대에 유럽을 덮친 전쟁과 폭력에 빗댄 거라고 읽어요. 눈에 안 보이게 퍼지고,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고,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점이 닮았으니까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전염병이 지나가도 낡지 않아요. 우리 삶에는 언제든 막막하고 불공평한 일이 닥치고,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거든요. 모르는 척 등 돌리거나, 리외처럼 옆 사람과 함께 자기 몫을 하거나요.

카뮈는 세상이 답을 주지 않는다는 '부조리'에서 시작했지만, 절망에서 멈추지 않았어요. 시지프처럼 다시 바위를 미는 '반항', 그리고 그 바위를 옆 사람과 함께 미는 '연대'로 나아갔죠.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 무서운 상황에서도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서로 손을 내미는 평범한 사람들. 카뮈가 우리한테 기억하라고 한 건 바로 그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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