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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옛 그리스 이야기에 시지프라는 사람이 나와요. 신들에게 단단히 벌을 받아서,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야 했죠. 그런데 꼭대기에 닿는 바로 그 순간 바위는 다시 저 아래로 굴러떨어져요. 시지프는 땀을 닦고 터덜터덜 내려가 다시 밀어 올리고, 또 떨어지고, 또 올리고. 이걸 영원히 반복해요. 끝도 없고 보람도 없는 일이죠.
이 오래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사람이 알베르 카뮈예요. 1913년부터 1960년까지, 마흔여섯 해를 살다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죠. 1957년에는 노벨 문학상도 받았어요. 카뮈는 이 시지프가 사실 우리랑 똑 닮았다고 봤어요.

카뮈가 가장 중요하게 본 말이 '부조리'예요. 어려운 말 같지만 장면은 쉬워요. 밤새 시험공부를 했는데 문제가 엉뚱하게 나왔을 때, "왜 이래?" 하고 따지고 싶은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 줄 때. 그 답답한 어긋남이 부조리예요.
우리는 마음속으로 "내 삶에는 뜻이 있을 거야, 세상은 다 이유가 있을 거야" 하고 바라요. 그런데 세상은 그 질문에 딱 부러지게 답해 주지 않아요. 해는 그냥 뜨고, 시간은 그냥 흐르죠. 사람의 '왜?'와 세상의 '침묵' 사이에 벌어지는 틈, 그게 바로 부조리예요. 바위를 밀어도 밀어도 다시 떨어지는 그 헛헛함과 똑같죠.

이 어긋남을 알아챈 사람 앞에는 보통 두 갈래 길이 있어 보여요. 하나는 "삶이 의미 없으면 그냥 그만두자" 하는 거예요. 카뮈는 이건 답이 아니라고 했어요. 또 하나는 "에이, 사실 저 위 어딘가에 다 뜻이 있을 거야" 하고 눈을 질끈 감고 믿어 버리는 거예요. 카뮈는 이것도 일종의 도망이라고 봤어요. 둘 다 어긋남을 못 견뎌서 눈을 감아 버리는 거니까요.
카뮈가 고른 건 세 번째 길이에요. 틈이 있다는 걸 똑바로 본 채로, 그래도 계속 사는 거예요. 이걸 '반항'이라고 불렀어요.

반항이라고 하면 문을 쾅 닫고 소리치는 모습이 떠오르죠. 카뮈가 말한 반항은 그런 게 아니에요. 오히려 조용한 쪽에 가까워요.
세상이 "네 삶에 미리 정해진 뜻은 없어"라고 말해도, "그래도 나는 오늘을 살고,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할 거야"라고 버티는 거예요. 답이 없는 걸 빤히 알면서도 등 돌리지 않고 끝까지 마주 보는 태도, 그게 반항이에요. 카뮈는 1951년에 낸 책 『반항하는 인간』에서 이 생각을 더 깊이 풀어냈어요. 무너지지 않고 "그래도"라고 말하는 힘에 관한 책이죠.

다시 바위 미는 시지프에게 돌아가 볼게요. 카뮈가 남긴 유명한 문장이 있어요.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
이상하게 들리죠. 영원히 헛수고하는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카뮈 생각은 이래요. 바위가 또 굴러떨어질 거란 걸 시지프는 이미 알아요. 알면서도 묵묵히 내려가 다시 바위를 잡죠. 그 순간만큼은 바위도, 산도, 그 일도 온전히 그의 것이에요. 벌은 신이 정해 줬지만, 그걸 견디며 살아 내는 방식만큼은 시지프 자신이 정하는 거예요. 결과가 헛되어도 그 일을 내 것으로 끌어안는 것, 카뮈는 거기에 사람의 진짜 힘이 있다고 봤어요.

시지프 신화는 끝없이 바위를 미는, 벌받은 사람의 이야기예요. 카뮈는 그 모습이 답 없는 세상을 사는 우리와 닮았다고 봤죠. 사람의 '왜?'와 세상의 침묵 사이에 벌어진 틈이 '부조리'고, 그 틈을 외면하지도 도망치지도 않고 똑바로 본 채 계속 사는 게 '반항'이에요. 그래서 카뮈는 헛수고하는 시지프조차 행복하다고 상상하자고 했어요. 의미가 거저 주어지지 않아도, 오늘을 내 것으로 살아 내는 일만큼은 내가 정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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