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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린아이들이 가끔 이런 걸 물어요. "세상은 신이 다 만들었다며? 그럼 나쁜 사람도, 아픈 것도 신이 만든 거야?" 어른들은 보통 말문이 막혀요. 신이 좋은 분이고 세상을 다 만들었다면, 거짓말이나 폭력 같은 나쁜 것도 그분 작품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오거든요. 그렇다고 신이 못 만든 게 있다고 하면, 신이 전부를 만들었다는 말과 부딪쳐요. 어느 쪽으로 가도 막다른 길 같죠.
이 질문은 아이만 하는 게 아니에요. 무려 1600년 전에 한 사람이 여기에 평생을 걸었어요. 그 사람 이름이 아우구스티누스예요.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부터 430년까지, 지금의 북아프리카 알제리쯤에서 살았던 사람이에요. 우리한테는 까마득히 먼 옛날이죠. 그는 젊을 때 꽤나 방황했어요. 좋은 머리로 출세도 하고 싶고, 마음 한쪽은 늘 허전하고. 그러다 서른한 살에 기독교로 마음을 돌리고, 그 과정을 솔직하게 적은 책 고백록을 남겼어요.
그가 머리를 싸맸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거였어요. 착한 신이 만든 세상에 왜 악이 있을까. 이걸 우리는 악의 기원 문제, 즉 나쁜 것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물음이라고 불러요.

젊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 붙잡은 답은 단순했어요. 한 9년쯤 마니교라는 종교에 빠져 있었는데, 거기 설명이 이랬어요. 세상에는 처음부터 두 개의 힘이 있다. 하나는 밝은 선의 힘, 하나는 어두운 악의 힘. 둘은 서로 영원히 싸우는 중이고, 우리가 겪는 나쁜 일은 그 어둠의 힘이 한 짓이다.
이러면 신은 책임을 벗어요. 나쁜 건 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따로 있던 어둠 탓이니까요. 깔끔해 보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가 영 걸렸어요. 그렇다면 선의 신은 그 어둠을 못 이기는, 반쪽짜리 신이 되잖아요. 모든 걸 만든 가장 큰 분이라기엔 너무 약해진 거예요.

오래 고민한 끝에 그는 생각을 통째로 뒤집어요. 우리가 실수한 지점은 악을 하나의 물건처럼 여긴 거라고요. 어둠이라는 검은 물질이 어딘가 있는 게 아니에요.
캄캄한 방을 떠올려 보세요. 그 어둠은 누가 부어 놓은 검은 물감이 아니라, 그냥 빛이 없는 상태예요. 추위도 마찬가지예요. 차가움이라는 알갱이가 날아오는 게 아니라, 열이 빠진 상태일 뿐이죠. 양말에 난 구멍도 그래요. 구멍이라는 재료가 따로 붙은 게 아니라, 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실이 없는 거예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악도 이렇다고 봤어요. 악은 따로 만들어진 무엇이 아니라, 좋아야 할 것이 망가지고 비어 버린 상태라고요. 그러니 신이 악을 만든 게 아니에요. 신은 좋은 것들을 만들었고, 악은 그 좋음이 어딘가 깎여 나간 빈자리인 거죠.

그래도 궁금하죠. 멀쩡하던 좋음이 왜 깎이고 비는 걸까요. 아우구스티누스의 답은 자유의지였어요. 우리에게 스스로 고를 힘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숙제를 해야 하는 아이가 눈앞의 사탕을 집는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 사탕이 나쁜 건 아니에요. 다만 더 중요한 걸 두고 덜 중요한 걸 고른 순간, 어긋남이 생겨요. 아우구스티누스가 본 악도 이런 모양이에요. 더 큰 좋음을 등지고 더 작은 좋음으로 돌아설 때, 그 틈에서 나쁜 일이 자라난다는 거죠. 악은 바깥에서 침입한 적이 아니라, 우리가 방향을 잘못 튼 자리에서 생겨나요.

이 답이 대단한 이유는 따로 있어요. 그는 악을 설명하려고 바깥 세상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봤어요. 나는 왜 알면서도 나쁜 쪽을 골랐을까, 그 부끄러운 마음까지 고백록에 그대로 적었죠.
이렇게 자기 내면을 깊이 파고들어 글로 남긴 사람은 그전에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내면 탐구라는 전통을 연 사람으로 불려요. 또 흩어져 있던 기독교 생각을 철학으로 단단하게 묶어낸 교부, 즉 초기 교회의 스승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고요. 160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 일기에 자기 마음을 솔직히 적을 때, 그 먼 뿌리에는 이 사람이 있어요.

착한 신이 만든 세상에 왜 나쁜 일이 있느냐는 물음 앞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두 가지를 바꿔 생각했어요. 첫째, 악은 따로 만들어진 물건이 아니라 좋음이 비어 버린 상태라는 것. 어둠이 빛의 부재이듯이요. 둘째, 그 빈자리는 우리가 더 큰 좋음 대신 더 작은 좋음을 고르는 자유의지에서 생긴다는 것. 그는 이 답을 바깥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에서 찾았고, 그 솔직한 들여다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내면 탐구의 시작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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