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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으로부터 이백 년쯤 전, 독일에 좀 특이한 철학자가 살았어요. 책상 한쪽에 황금빛 부처상을 올려 두고, 다른 쪽엔 자기가 존경하던 철학자의 흉상을 놓아둔 사람이었죠. 이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년부터 1860년까지 살았던 서양 사람이에요.
그 시절 유럽에서 부처상은 정말 낯선 물건이었어요. 동네 사람 대부분은 불교가 뭔지, 인도에 어떤 생각들이 있는지조차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 사람은 왜 멀리 동양에서 건너온 생각에 그렇게 빠졌을까요? 그 이야기를 따라가 볼게요.

쇼펜하우어는 서른 살 무렵에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을 써요. 제목만 보면 머리가 아프죠. 그런데 풀어 보면 어렵지 않아요.
'표상'은 우리 눈에 비친 세상이에요. 지금 여러분이 보는 방, 들리는 소리,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 이게 전부 표상이에요. '의지'는 그 뒤에서 쉬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고 밀어붙이는 힘이고요. 배고프면 먹고 싶고, 갖고 싶고, 이기고 싶은 그 끈질긴 마음 말이에요.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이 '원하는 힘'으로 굴러간다고 봤어요. 그래서 인생은 자꾸 목마르고 괴로운 거라고요. 좀 우울한 생각이죠? 그런데 이 생각을 단단하게 받쳐 준 게 바로 동양의 옛 지혜였어요.

쇼펜하우어는 스물여섯 살쯤, 한 친구의 소개로 인도의 아주 오래된 경전 '우파니샤드'를 만나요. 그가 읽은 건 산스크리트어 원문이 아니라, 페르시아어로 한 번, 다시 라틴어로 또 한 번 옮겨진 책이었어요. 세 나라 말을 거쳐 그의 손에 닿은 셈이죠.
거기서 그는 '마야'라는 말에 깜짝 놀라요. 우리가 보는 세상이 마야, 곧 얇은 베일 같은 것이라는 가르침이었거든요. 마치 김이 잔뜩 서린 안경처럼요. 우리는 안경에 비친 흐릿한 모습을 진짜라고 믿지만, 그 너머에 진짜가 따로 있다는 거예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표상'이 바로 이 베일이었어요. 멀리 떨어진 인도의 옛 생각과 자기 생각이 똑 닮은 걸 보고, 그는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해요.

불교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어요. 인생이 괴로운 건 끝없는 욕심 때문이라고요. 하나를 가지면 둘을 원하고, 둘을 가지면 셋이 아쉬운 마음. 그 목마름이 멈추지 않아서 사람은 늘 힘들다는 거예요.
쇼펜하우어의 '의지'가 바로 이거예요. 원하는 힘이 우리를 쉬지 않고 떠밀기 때문에, 잠깐 만족해도 금세 또 다른 걸 원하게 된다고 봤죠. 마치 짠 바닷물을 마실수록 더 목마른 것처럼요. 동양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괴로움의 정체를 들여다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길은 뭘까요? 쇼펜하우어는 두 가지를 말해요. 하나는 아름다운 음악이나 그림에 푹 빠지는 순간이에요. 그때만큼은 원하는 마음을 잠시 잊고 편안해진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욕심을 아예 내려놓는 삶이에요. 이건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의 평화, 욕망이 꺼진 고요한 상태와 많이 닮았어요.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게요. 쇼펜하우어가 불교 신자가 된 건 아니에요. 그는 자기 식으로 세상을 풀다가, 동양의 지혜 속에서 같은 답을 발견하고 반가워한 쪽에 가까웠어요. 빌려 왔다기보다 '먼 곳에서 같은 생각을 만났다'고 보는 게 더 맞아요.

쇼펜하우어 이전의 유럽 철학은 주로 유럽 안에서만 생각의 재료를 찾았어요. 그런데 그는 처음으로 동양의 지혜를 진지하게 끌어안은 서양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어요. 덕분에 동양과 서양의 생각이 한 책상 위에서 만나게 됐죠.
이 만남은 그 뒤로도 이어져요. 그의 책을 읽고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음악가, 작가, 또 다른 철학자로 줄줄이 나왔거든요. 책상 위 작은 부처상 하나가, 동양과 서양을 잇는 다리가 된 셈이에요.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원하는 힘'이 굴러가는 곳으로 보고, 끝없는 욕심이 괴로움을 만든다고 생각한 철학자예요. 그가 이 생각을 단단히 다지는 데에는 인도의 우파니샤드와 불교의 지혜가 큰 힘이 됐어요. 세상을 베일로 본 '마야', 욕심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가르침이 그의 '표상'과 '의지'에 그대로 비쳐요. 그는 동양 사상을 그대로 베낀 게 아니라, 자기 생각과 똑 닮은 답을 먼 곳에서 만나 반가워한 사람이었어요. 책상 위 부처상 하나가 동양과 서양의 생각을 이어 준 장면, 그것만 기억해도 충분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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