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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며칠을 고민하다 드디어 갖고 싶던 운동화를 샀다고 해볼게요. 박스를 여는 순간은 정말 짜릿하죠. 그런데 일주일쯤 신고 나면 어떤가요. 그 신발은 어느새 그냥 '신발'이 되고, 마음은 벌써 다른 무언가를 두리번거립니다. 분명 원할 때는 그렇게 애가 탔는데, 막상 가지면 금방 심심해져요.
이 묘한 흐름을 200년쯤 전에 진지하게 파고든 사람이 있어요.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예요. 1788년부터 1860년까지, 일흔두 해를 살았던 사람이죠. 그는 우리 마음이 두 가지 사이를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한다고 봤어요. 한쪽은 '고통', 다른 한쪽은 '권태', 그러니까 지루함이에요.

옛날 괘종시계 안에는 좌우로 흔들리는 추가 달려 있어요. 그걸 진자라고 불러요. 왼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오른쪽 끝까지, 가운데 가만히 멈추는 법이 없죠.
쇼펜하우어는 사람 마음도 꼭 이 추 같다고 했어요. 한쪽 끝에는 '뭔가를 못 가져서 괴로운 상태'가 있어요. 시험 결과를 기다리거나, 갖고 싶은 걸 못 가졌을 때의 안달이죠. 반대쪽 끝에는 '원하던 걸 다 가져서 할 일이 없는 상태'가 있어요. 바로 지루함이에요. 그는 우리가 이 두 끝 사이를 계속 오갈 뿐, 가운데의 편안한 만족에는 좀처럼 머물지 못한다고 봤어요.

왜 추는 멈추지 못할까요. 쇼펜하우어는 그 뒤에 '의지'라는 게 있다고 했어요. 어렵게 들리지만, 무언가를 끝없이 원하고 바라는 마음의 엔진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배고프면 먹고 싶고, 먹고 나면 또 다른 게 갖고 싶고, 이 엔진은 도무지 시동을 끄지 않아요.
그는 이 생각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책에 담았어요. 1818년, 그의 나이 서른에 써낸 대표작이에요. 세상도, 사람 마음도 결국 이 멈출 줄 모르는 의지가 밀고 가는 것이라고 본 거죠. 그래서 그의 철학은 세상을 꽤 어둡게 보는 '염세적'이라는 말로 자주 불려요. 세상이 즐겁고 밝다기보다, 끝없는 갈망 때문에 늘 조금은 고달프다고 봤거든요.

이제 운동화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신발을 못 가졌을 때는 갖고 싶어서 마음이 따끔거려요. 이게 고통 쪽 끝이에요. 그런데 막상 가지면, 그 따끔거림이 사라진 자리에 '이제 뭐 하지' 하는 심심함이 들어와요. 이게 권태 쪽 끝이고요.
쇼펜하우어가 날카로웠던 점은 여기예요. 우리는 보통 '원하는 걸 다 가지면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는 원하는 걸 다 가진 순간 찾아오는 게 행복이 아니라 지루함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또 새로운 걸 원하게 되고, 다시 못 가져서 괴롭고, 가지면 또 심심하고. 추는 그렇게 계속 흔들려요.

그렇다고 쇼펜하우어가 '인생은 괴로우니 포기하라'고 한 건 아니에요. 그는 이 끝없는 갈망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는 길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중 하나가 예술이에요. 좋은 음악을 듣거나 그림에 푹 빠져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원하는 나'를 잠시 잊고 그저 바라보게 돼요. 그 순간만큼은 추가 가운데에서 잠깐 숨을 고르는 셈이죠.
그의 이야기가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매일 이 진자를 경험하기 때문이에요. 새 휴대폰, 좋아요 숫자, 다음 여행 계획. 손에 넣는 순간 설렘이 식고 또 다른 걸 찾는 그 마음의 움직임을, 그는 200년 전에 또렷하게 그려 둔 거예요.

쇼펜하우어는 사람 마음을 시계추에 빗댔어요. 못 가져서 괴로운 '고통'과, 가져서 심심한 '권태' 사이를 평생 오간다고요. 그 뒤에는 끝없이 무언가를 원하는 '의지'라는 엔진이 있고, 그래서 원하는 걸 다 가져도 만족이 오래가지 않아요. 다음에 갖고 싶던 걸 손에 넣고도 금방 시시해진다면, 그건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타는 그 진자에 올라 있을 뿐이라는 것. 그렇게 한 발 떨어져 내 마음을 바라보는 일, 그게 이 오래된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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