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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 다섯 명이 같은 교실에 앉아 있어요. 그런데 누구는 덥다고 하고, 누구는 춥다고 하고, 누구는 칠판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해요. 분명 똑같은 교실인데 머릿속에 들어온 모습은 제각각이에요.
여기서 이상한 질문이 하나 생겨요. 우리는 진짜 '교실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내 눈과 머리가 만들어 낸 '교실 그림'을 보고 있는 걸까요? 약 200년 전 독일에 살던 한 철학자가 바로 이 질문을 평생 붙잡았어요. 이름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1788년부터 1860년까지 살았던 사람이에요.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해요.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세상은 사실 우리 머릿속에 뜬 화면 같은 거라고요. 게임 화면을 떠올려 보세요. 화면 속 풍경은 분명 보이지만, 그건 컴퓨터가 계산해서 만들어 낸 그림이지 진짜 산과 강은 아니잖아요.
우리도 비슷해요. 눈이 빛을 받아들이고 뇌가 그걸 색과 모양으로 바꿔 줘야 비로소 '본다'는 일이 일어나요.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을 '표상'이라고 불렀어요. 표상은 어려운 말 같지만, 그냥 '내 마음에 나타난 모습'이라는 뜻이에요. 그가 1819년에 펴낸 책 제목이 바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인데, 절반은 이 이야기예요. 세상은 내게 나타난 그림이라는 거죠.
그런데 쇼펜하우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아요. 그림 뒤에 진짜가 따로 있다고 봤거든요. 그게 책 제목의 나머지 절반, '의지'예요.
의지를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배가 고프면 먹고 싶고, 졸리면 자고 싶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자꾸 마음이 가는, 그 '하고 싶음' 자체예요. 식물이 햇빛 쪽으로 줄기를 뻗는 것도, 돌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도, 쇼펜하우어 눈에는 다 같은 힘이 다른 옷을 입은 거예요. 세상 모든 것 밑바닥에 멈추지 않고 '~하려는' 힘이 흐르고,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은 그 힘이 겉으로 드러난 그림일 뿐이라는 거죠.
이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면 마음이 좀 무거워져요. 의지, 그러니까 '하고 싶음'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거든요. 갖고 싶던 장난감을 받으면 잠깐 좋다가, 며칠 지나면 또 다른 게 갖고 싶어져요. 시험에 붙으면 기쁘다가 금세 다음 걱정이 와요.
쇼펜하우어는 삶이 이렇게 '원함과 잠깐의 만족과 다시 원함'을 끝없이 반복하는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세상을 어둡게 보는 쪽, 곧 염세적이라고 불려요. 다만 그가 그냥 절망만 한 건 아니에요.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것을 가만히 바라볼 때, 잠깐이나마 그 끝없는 '하고 싶음'에서 풀려나 마음이 고요해진다고 했어요.

쇼펜하우어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책은 거의 안 팔렸어요. 처음 펴낸 책이 한참 동안 창고에서 먼지만 쌓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예요. 그런데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 사이에 갑자기 유명해졌고, 이후엔 음악가, 작가, 다른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사람들이 그에게 끌린 이유는, '왜 가져도 가져도 허전할까' 같은 누구나 느끼는 마음을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이에요. 화려한 위로 대신, 우리 안에서 쉬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는 그 힘을 똑바로 들여다보게 했거든요.
쇼펜하우어는 세상을 두 겹으로 봤어요. 우리 눈에 보이는 풍경은 머릿속에 나타난 그림인 '표상'이고, 그 그림 뒤에는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원하는 힘인 '의지'가 흐른다고 했어요. 그 힘이 끝이 없기에 삶은 자꾸 허전해지고, 그래서 그의 철학은 세상을 어둡게 보는 염세적 철학으로 불려요. 다음에 갖고 싶던 걸 손에 넣고도 금세 또 다른 게 당길 때, 200년 전 한 사람이 바로 그 마음의 정체를 오래 들여다봤다는 걸 떠올려 보면 좋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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