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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한 적 있을 거예요.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게임 그만해라, 그 친구랑 놀지 마라, 그 책은 읽지 마라. 분명히 내 일인데, 옆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안다는 듯이 끼어들어요.
그런데 한번 생각해 봐요. 그 사람 말이 정말 맞다고 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 주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직접 골라 보고, 가끔 실수도 하면서 배우는 게 진짜 내 삶이에요. 바로 이 고민을, 지금부터 160년도 더 전에 아주 깊이 파고든 사람이 있어요.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에요.

밀은 1806년부터 1873년까지 영국에서 살았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직접 교육을 맡았는데, 밀은 세 살 무렵부터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대요. 우리가 한글을 막 뗄 나이에, 그는 외국 옛글을 읽고 있었던 거예요. 열 살이 되기 전에 이미 어른들이 읽는 역사책과 철학책을 잔뜩 읽었고요.
그러다 스무 살쯤, 밀은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큰 슬럼프를 겪어요. 머릿속은 지식으로 가득한데 정작 사는 게 기쁘지 않았던 거죠. 이 시기를 지나면서 그는 깨달아요. 사람에게는 옳은 정답뿐 아니라, 스스로 느끼고 고르는 마음도 똑같이 소중하다는 걸요. 이 깨달음이 나중에 그의 생각 전체에 스며들어요.

밀이 1859년에 쓴 책 자유론에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한 규칙이 하나 나와요. 우리가 흔히 해악 원리라고 부르는 거예요.
어렵게 들리지만 장면으로 그리면 쉬워요. 놀이터에서 내가 그네를 타는 건 자유예요. 그런데 그네를 마구 휘둘러 옆 친구를 다치게 하면, 그건 멈춰야죠. 밀의 규칙이 딱 이거예요. 내 행동이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그게 설령 나에게 손해처럼 보이는 선택이라도요.
그러니까 "다 너 잘되라고"라는 이유만으로는, 어른이라도 남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다는 거예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지 아닌지, 그 선만 지키면 나머지는 각자의 몫이라는 생각이죠. 이 단순한 선 하나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유의 바탕이 됐어요.

밀은 또 다른 큰 질문도 붙들었어요. 무엇이 좋은 행동일까 하는 거예요. 그가 이어받은 생각을 공리주의라고 불러요.
공리주의는 이렇게 말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행복을 주는 행동이 좋은 행동이다. 마치 행복을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듯이요. 밀보다 앞선 학자들은 행복의 양만 따졌어요. 즐거움이 크면 클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요.
그런데 밀은 여기서 고개를 갸웃해요. 행복이 정말 양으로만 잴 수 있을까. 종일 군것질하는 즐거움과, 좋은 책 한 권을 다 읽었을 때의 뿌듯함이 정말 같은 걸까. 둘 다 즐거움이지만 어딘가 결이 다르잖아요.

그래서 밀은 행복에도 질이 있다고 봤어요. 이걸 질적 공리주의라고 불러요. 즐거움의 양뿐 아니라, 그 즐거움이 어떤 종류인지도 따져야 한다는 거죠.
그는 유명한 비유를 남겼어요. 배불러서 만족한 돼지보다, 배고프더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다고요. 왜냐고요? 한번 책 읽는 기쁨이나 무언가를 깊이 이해하는 즐거움을 맛본 사람은, 그걸 단순한 배부름과 바꾸려 하지 않거든요. 두 가지를 다 겪어 본 사람이 더 귀하게 여기는 쪽, 그게 더 높은 질의 행복이라고 밀은 봤어요.
이건 좀 까다로운 생각이에요. 누구의 즐거움이 더 낫다고 줄을 세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밀이 던진 물음은 분명해요. 행복을 그냥 양으로만 재면,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는 게 아닐까.

밀의 두 생각은 결국 한 곳에서 만나요. 사람을 스스로 고르고 느낄 줄 아는 존재로 믿어 준다는 점이에요.
자유론에서는 남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각자 자기 삶을 살게 두라고 했고, 질적 공리주의에서는 사람이 더 깊은 행복을 알아볼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오늘날 표현의 자유나 개인의 선택을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여전히 밀의 책을 펴 봐요.

존 스튜어트 밀은 두 가지 큰 물음을 남긴 철학자예요. 하나는 자유론의 규칙이에요. 내 행동이 남을 해치지 않는 한, "너 잘되라고"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도 내 삶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다는 거죠. 다른 하나는 질적 공리주의예요. 행복은 양만이 아니라 질도 중요하며, 배부른 돼지보다 생각하는 사람의 행복이 더 값지다고 본 거예요. 두 생각 모두, 사람을 스스로 고르고 깊이 느낄 줄 아는 존재로 존중한다는 한 마음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내 선택이 정말 내 것인지 묻고 싶을 때, 밀의 이름을 떠올려 보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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