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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가족끼리 저녁 메뉴를 정하다 다툰 적 있을 거예요. 한 사람이 목소리를 키우면 다들 입을 다물고, 결국 제일 크게 말한 사람 뜻대로 정해져요. 그런데 식탁을 떠나고 나면 어딘가 찜찜해요. 그 사람 말이 맞아서 정해진 게 아니라, 그냥 시끄러워서 정해졌으니까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평생 이 찜찜함을 붙잡고 늘어진 사람이에요. 힘이나 목소리 크기가 아니라, 정말 더 나은 이유 때문에 결론이 나는 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게 그의 평생 질문이었어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는 이 한 가지 질문으로 두꺼운 책을 여러 권 썼답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1929년에 태어난 독일 사람이에요. 열다섯 살 무렵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걸 겪었어요. 멀쩡해 보이던 평범한 어른들이 어쩌다 그렇게 끔찍한 일에 휩쓸렸는지, 그는 두고두고 궁금했어요. 사람들이 제대로 묻고 따졌다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요.
그래서 그는 '비판이론'이라는 흐름에 몸담았어요. 비판이론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한 연구소에 모인 학자들이 만든 사상으로, 사회가 어쩌다 잘못 굴러가는지 따져 묻는 학문이에요. 하버마스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어요. 잘못을 욕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럼 제대로 된 사회는 어떤 모습이냐'를 그리려 했지요.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하버마스는 첫 대표작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끄집어냈어요. 300여 년 전 유럽의 카페예요.
그때 카페에는 신분이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섞여 앉아 신문을 읽고 정치를 떠들었어요. 백작이든 빵집 주인이든, 그 자리에선 신분이 아니라 '누가 더 그럴듯하게 말하느냐'로 대접이 갈렸어요. 하버마스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의견을 만들어 가는 자리를 '공론장'이라고 불렀어요.
거창한 말 같지만, 사실 동네 단톡방이나 댓글창도 작은 공론장이에요. 사람들이 모여 "이건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문제야" 하고 말을 주고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공론장이 될 수 있어요.

하버마스는 사람들이 말을 쓰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눴어요.
하나는 '전략적 행위'예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려고 말을 도구처럼 쓰는 거예요. 광고가 그렇고, 겁을 줘서 따르게 하는 것도 그래요. 여기서 말은 상대를 미는 힘이에요. 이기긴 하는데, 상대가 진심으로 납득한 건 아니지요.
다른 하나가 그가 가장 아낀 '의사소통 행위'예요. 서로를 속이거나 누르지 않고, 오직 '네 말이 맞네'라는 납득만으로 합의에 이르려는 대화예요. 친구가 화난 이유를 차분히 듣고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마음이 맞춰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이걸 하고 있어요. 하버마스는 1981년에 펴낸 두꺼운 책 한 질을 통째로 이 두 번째 대화를 설명하는 데 썼어요.

그럼 좋은 대화의 조건은 뭘까요? 하버마스는 이상적인 그림을 하나 그려요.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아무도 힘으로 입을 막지 않고, 모두가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되물을 수 있는 자리요.
이런 자리에서는 딱 하나만 이겨요. 바로 '더 나은 논거'예요. 직책이 높아서도,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그냥 이유가 더 탄탄해서 이기는 거예요. 하버마스는 이걸 두고, 더 좋은 논증의 힘 말고는 어떤 힘도 통하지 않는 자리라고 했어요.
물론 현실에 이렇게 완벽한 자리는 없어요. 하지만 이 그림은 일종의 잣대가 돼요. 어떤 토론이 비뚤어졌는지, 어디서부터 힘이 끼어들었는지를 재 보는 기준이 되어 주거든요.

하버마스가 보기에 민주주의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 투표하는 제도만은 아니에요. 진짜 알맹이는 그 사이사이, 사람들이 카페에서든 댓글창에서든 끊임없이 따지고 설득하며 함께 의견을 빚어 가는 과정에 있어요. 투표는 그렇게 익은 생각에 도장을 찍는 일에 가깝지요.
그래서 누군가 돈이나 권력으로 이 대화를 비틀면, 민주주의의 뿌리가 마르는 거예요. 가짜뉴스가 위험한 것도 같은 이유예요. 더 나은 논거가 아니라 거짓이 사람들을 움직이면, 공론장 자체가 망가지니까요. 아흔이 넘은 지금도 그가 이 문제를 놓지 못하는 이유랍니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어떻게 하면 힘이 아니라 더 나은 이유로 결론이 나는 대화가 가능할까를 평생 물은 철학자예요.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만드는 자리를 공론장이라 불렀고, 서로를 누르지 않고 납득으로 합의하는 대화를 의사소통 행위라 했어요. 그리고 그런 대화가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도 살아 있다고 봤지요. 다음에 어떤 대화가 끝나고 찜찜하다면, 한번 떠올려 보세요. 더 나은 이유가 이긴 자리였는지, 아니면 그냥 목소리가 이긴 자리였는지를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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