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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학급에서 소풍 장소를 정한다고 해볼게요. 누구는 놀이공원, 누구는 바닷가에 가고 싶어요. 선생님이 "자, 다 같이 사이좋게 하나로 정하자" 하시면, 겉으로는 박수치고 끝나지만 마음속으로는 영 못마땅한 친구가 꼭 한둘 있죠. 그 친구는 그냥 입을 다물 뿐, 생각이 바뀐 건 아니에요.
우리는 보통 이렇게 배워요. 의견이 갈리는 건 나쁜 것, 하나로 합쳐지는 게 좋은 것이라고요. 그런데 어떤 정치철학자는 정반대로 말했어요. 의견이 갈리는 그 갈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짜 모습이라고요. 그 사람이 바로 샹탈 무페예요.
샹탈 무페는 1943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정치철학자예요. 지금은 영국 런던에서 수십 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글을 써 왔어요. 젊을 때부터 한 가지 질문을 붙들고 살았어요. "사람들이 서로 의견이 다른데, 그래도 사회는 어떻게 같이 굴러갈까?" 하는 질문이요.
동료이자 평생의 동반자였던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1985년에 쓴 책으로 이름을 알렸고, 그 뒤로도 갈등과 민주주의를 다룬 책을 여러 권 냈어요. 어렵게 들리지만 핵심 생각은 의외로 단순해요. "갈등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없애려 애쓰지 말고, 잘 다루는 법을 배우자."

무페가 만든 가장 중요한 구별이 있어요. 바로 적과 맞수의 차이예요.
축구 경기를 떠올려 볼게요. 상대 팀은 분명히 나를 이기려 들어요. 90분 동안 거칠게 부딪히고 땀 흘리며 싸우죠. 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서로 악수를 해요. 상대 팀은 없애 버려야 할 적이 아니라, 같은 규칙 안에서 겨루는 맞수니까요. 운동장과 규칙을 함께 인정하기 때문에, 아무리 치열하게 싸워도 관계가 깨지지 않아요.
무페는 이걸 어려운 말로 아고니즘이라고 불렀어요. 그리스어로 운동 경기, 겨루기를 뜻하는 말에서 따왔어요. 반대로 상대를 아예 없애 버려야 할 적으로 보는 건 적대라고 했고요. 무페가 보기에 민주주의가 할 일은, 사람들 사이의 적대를 겨루기로 바꿔 내는 거예요. 싸움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서로를 미워해 무너뜨리지 않고도 마음껏 싸울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드는 일이죠.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믿어요.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충분히 대화하면, 결국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의 정답에 이를 수 있다고요. 무페는 여기에 고개를 저었어요.
세상에는 처지가 다르고 바라는 게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돈이 많은 사람과 빠듯한 사람, 공장을 가진 사람과 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바람은 말로 곱게 다 풀리지 않아요. 어느 쪽 손을 들어 주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손해를 봐요. 그래서 정치에는 늘 우리 편과 다른 편이 생겨요. 무페는 이걸 억지로 지우려 하지 말고, 정치의 원래 성질로 받아들이자고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 이제 다 합의했어요, 갈등은 끝났어요" 하고 뚜껑을 덮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불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갈 곳을 잃어요. 마치 끓는 냄비에 뚜껑을 꽉 닫아 둔 것과 비슷해요. 김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으면, 압력은 안에서 점점 더 커지죠. 그렇게 답답함이 쌓이면 사람들은 더 위험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요. "기존 정치인은 다 한통속이야, 우리만 옳고 저쪽은 없애야 할 적이야" 하고 외치는 극단적인 외침이요.
무페는 사람들이 마음껏 다툴 통로를 막으면, 오히려 진짜 무서운 적대가 자라난다고 봤어요. 적당히, 그러나 제대로 싸우게 두는 것이 도리어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페는 사람들의 불만을 점잖게 덮기보다, 그 불만을 떳떳한 목소리로 끌어내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무페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좋다고 여기는 말들을 다시 보게 해요. 갈등 없는 사회, 모두가 한마음 같은 말이요. 듣기엔 참 좋지만, 그 조용함이 사실은 누군가의 입을 막아서 만든 조용함일 수도 있거든요.
무페가 바라는 건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에요. 서로 끝까지 의견이 다르더라도, 상대를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같은 운동장 위의 맞수로 인정하는 사회예요.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같이 살아가는 법, 그게 무페가 평생 고민한 민주주의의 모습이에요.

샹탈 무페는 갈등을 민주주의의 고장 난 부분이 아니라 원래의 모습으로 본 정치철학자예요. 중요한 건 갈등을 없애는 게 아니라, 상대를 없애야 할 적이 아닌 같은 규칙 안의 맞수로 바꾸는 일이에요. 사이좋아 보이려고 갈등에 뚜껑을 덮으면, 불만은 더 위험한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무페는 경고했어요.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왜 이렇게 다들 싸우기만 하냐"고 할 때, 한 번쯤 이렇게 생각해 봐도 좋아요. 어쩌면 그 다툼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잘 살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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