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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새로 산 휴대폰을 떠올려 보세요. 처음 켰을 때는 광고도, 이상한 앱도, 금 간 화면도 없어요. 깨끗하죠. 그런데 한두 해 쓰다 보면 어느새 알림이 잔뜩 쌓이고, 누가 깔았는지 모를 앱이 배터리를 잡아먹어요. 망가진 건 휴대폰 잘못일까요, 아니면 그동안 쌓인 것들 탓일까요?
약 삼백 년 전 한 사람은 사람도 이와 비슷하다고 봤어요. 사람은 원래 깨끗하고 착하게 태어나는데, 살면서 사회가 그 위에 이상한 걸 자꾸 덧씌운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바로 장자크 루소예요. 스위스 제네바에서 1712년에 태어나 프랑스에서 활동하다 1778년에 세상을 떠난, 예순여섯 해를 산 사상가예요.

루소가 즐겨 한 상상이 있어요. 사람한테서 직업, 돈, 지위, 남들 눈치 같은 걸 한 겹씩 벗겨 내면 마지막에 뭐가 남을까 하는 거예요. 그렇게 다 벗긴 맨 처음 상태를 그는 '자연 상태'라고 불렀어요.
어려운 말 같지만 장면으로 그리면 쉬워요. 학교도, 시험도, 계급장도 없던 시절, 사람이 그냥 숲에서 혼자 살던 모습을 떠올리면 돼요. 루소는 그때 사람은 욕심이 적고, 남이 아프면 그냥 안쓰러워할 줄 아는 순한 존재였다고 봤어요. 다툼이 생긴 건 땅에 줄을 긋고 '여기부터 내 거'라고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거죠. 누군가 더 가지면 옆 사람은 빼앗기고, 그렇게 비교와 욕심이 자라났다는 이야기예요.
이건 역사 기록이 아니라 루소가 사람을 이해하려고 만든 생각 실험이에요. 진짜 옛날이 그랬다는 증거는 없어요. 다만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게 사실은 나중에 덧씌워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장치였어요.
그렇다고 루소가 다시 숲으로 돌아가자고 한 건 아니에요. 사람은 이미 모여 살고 있으니까요. 대신 그는 1762년에 펴낸 '사회계약론'이라는 책에서 다른 질문을 던졌어요.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모여야 아무도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학급 회의를 떠올려 보세요. 힘센 한 명이 규칙을 정해 다 따르라고 하면 나머지는 불만이 쌓여요. 그런데 반 전체가 둘러앉아 '우리 이렇게 하자'고 같이 정하면, 그 규칙은 누가 시킨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든 게 돼요. 그래서 따르는 게 곧 내 뜻을 따르는 일이 되죠.
루소는 이렇게 모두가 함께 바라는 공통의 방향을 '일반의지'라고 불렀어요. 내 욕심 하나하나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게 뭘까'를 모았을 때 나오는 마음이에요. 좋은 사회란 힘센 누군가가 다스리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정한 약속 위에 서야 한다는 생각, 이게 그가 남긴 큰 한 걸음이에요.

같은 해에 루소는 '에밀'이라는 책도 펴냈어요. 에밀이라는 가상의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따라가며 교육을 이야기한 책이에요.
그때 어른들은 아이를 '덜 자란 어른' 정도로 봤어요. 그래서 어려운 지식을 빨리 머리에 채워 넣으려 했죠. 마치 작은 화분에 큰 나무를 억지로 욱여넣듯이요. 루소는 그게 거꾸로라고 했어요. 아이는 아이만의 때가 있고, 직접 만지고 넘어지고 궁금해하면서 배운다는 거예요. 책을 미리 다 외우게 하는 것보다, 스스로 묻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낫다고요.
앞에서 본 '사람은 착하게 태어난다'는 생각이 여기서 다시 이어져요. 아이 안에 이미 좋은 싹이 있으니, 어른은 그걸 망치지 않게 잘 지켜 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오늘날 '아이의 속도를 존중하자'는 말의 뿌리에 이 책이 있어요.

장자크 루소는 사람이 본래 착하게 태어난다고 보고, 그 위에 덧씌워진 것들을 한 겹씩 벗겨 보려 했던 사상가예요. '자연 상태'라는 상상으로 사람의 맨 처음을 그렸고, '사회계약론'에서는 모두가 함께 정한 약속, 곧 일반의지 위에 선 사회를 그렸어요. '에밀'에서는 아이를 작은 어른이 아니라 제 속도로 자라는 존재로 보자고 했고요. 세 이야기는 결국 하나로 이어져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규칙과 모습이 사실은 나중에 덧씌워진 것일 수 있으니, 한 번쯤 처음으로 돌아가 '원래는 어땠을까'를 물어보자는 거예요. 그 질문 자체가 루소가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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