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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793년의 파리를 한번 떠올려 볼까요. 거리에는 군인들이 한 사람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잡히면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에요.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빌린 방 안에서 짐을 싸거나 도망갈 길을 찾는 대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어요. 그것도 '인류는 앞으로 점점 더 나아질 거예요'라는 희망에 찬 글을요.
이 이상한 사람의 이름이 콩도르세예요. 프랑스에서 1743년에 태어나 1794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쉰한 살까지 산 사람이에요.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밝은 글을 남긴 이 수학자가 도대체 무엇을 믿었는지, 지금부터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보통 우리가 떠올리는 철학자는 멋진 말로 생각을 풀어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콩도르세는 좀 달랐어요. 그는 무엇보다 먼저 수학자였어요. 스물여섯 살 무렵에 이미 프랑스 과학원의 회원이 되었을 만큼 뛰어났지요.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어요. 수학은 별이 어디로 움직일지, 주사위가 어떻게 나올지를 꽤 잘 맞혀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도 숫자로 따져 보면, 더 공정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는 별이나 도형이 아니라 '사람들의 선택'에 수학을 들이댄 거예요.
여기서 그가 발견한 재미있는 문제를 하나 보여 드릴게요. 친구 셋이서 저녁 메뉴를 정한다고 해 봐요. 후보는 피자, 치킨, 떡볶이예요. 셋이 좋아하는 순서가 제각각이면 이상한 일이 벌어져요. 다수결로 물으면 피자가 치킨을 이기고, 치킨이 떡볶이를 이겨요. 그럼 피자가 최고일까요? 그런데 다시 물으면 떡볶이가 피자를 이겨 버려요. 가위바위보처럼 빙글빙글 도는 거예요.
이렇게 다수결이 자기 꼬리를 무는 현상을 '콩도르세의 역설'이라고 불러요. 여럿이 정하면 늘 답이 깔끔하게 나올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그가 처음으로 또렷이 보여 준 거예요.
그렇다고 그가 다수결을 포기한 건 아니에요. 그는 또 이런 것도 밝혔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답을 맞힐 확률이 반보다 조금이라도 높다면, 사람이 많이 모여 함께 정할수록 그 무리의 답은 점점 더 정확해진다고요. 혼자보다 여럿의 머리가 낫다는 우리의 오랜 믿음에, 수학으로 근거를 달아 준 셈이에요.

그가 숨어서 쓴 책의 제목은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예요. 제목은 어렵지만 생각은 단순해요. 사람의 역사 전체를 '배움이 쌓여 온 한 편의 긴 이야기'로 본 거예요.
그는 이 이야기를 열 개의 시대로 나눴어요. 동굴에 살던 아주 먼 옛날부터 자기가 살던 시대까지가 아홉 개고, 마지막 열 번째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예요. 그가 이렇게 자신 있었던 이유가 있어요. 한번 알게 된 지식은 책과 사람을 타고 퍼져서 쉽게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러니 인류는 넘어져도 다시, 조금씩 더 위로 올라간다고 본 거예요.
그 미래에 그는 꽤 대담한 것들을 적어 두었어요. 모두가 교육을 받는 세상,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 세상, 노예제가 사라진 세상, 사람들이 더 오래 사는 세상이요. 230년도 더 전에 한 말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랍지요.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건 내용보다 그것이 쓰인 상황이에요. 콩도르세는 원래 혁명을 함께한 사람이었는데, 혁명의 흐름이 바뀌면서 도리어 쫓기는 신세가 되었어요. 그렇게 여러 달을 숨어 지내면서, 그는 자신의 끝이 가까웠다는 걸 알면서도 인류의 밝은 앞날을 적어 내려갔어요.
결국 그는 1794년 봄에 붙잡혔고, 감옥에 갇힌 지 이틀 만에 숨졌어요.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지금도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어요. 그가 남긴 책은 이듬해인 1795년, 그가 떠난 뒤에야 세상에 나왔지요. 자기 손으로 그 미래를 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희망을 기록한, 묘하게 뭉클한 책이에요.

콩도르세는 말 대신 숫자로 세상을 더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은 수학자예요. 그는 다수결이 빙글빙글 돌 수 있다는 역설을 찾아냈고, 동시에 여럿이 함께 정할수록 답이 정확해진다는 것도 보여 줬어요. 그리고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인류는 배움을 쌓으며 계속 나아간다는 책을 남겼어요. 가장 어두운 방에서 가장 밝은 미래를 적은 사람, 그렇게 기억하면 콩도르세가 오래 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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